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왼쪽)가 2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시 청문회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왼쪽)가 20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상시 청문회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가 국정 현안에 관한 청문회를 쉽게 열 수 있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정부에 대한 국회 견제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국회가 권한을 남용해 청문회를 수시로 열면 국정을 마비시키고 정쟁만 유발할 수 있다고 청와대와 여당은 우려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선 기업인들까지 줄줄이 청문회 증인으로 불려나올 가능성이 있다. 여권 일부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법률안 재의 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통과된 이 법안은 일명 ‘상시 청문회법’으로 불린다. 국회 상임위원회가 ‘소관 현안’에 대해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 대상을 ‘법안 심사나 중요 안건에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 기존 국회법에 비해 청문회 개최가 쉬워졌다.

새누리당은 이 법에 반대했지만 야당과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이 찬성해 통과됐다. 청문회는 상임위 소속 의원 과반수 참석에 참석 의원 과반수가 찬성하면 열 수 있어 여소야대(與小野大)인 20대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힘을 합치면 얼마든지 개최가 가능하다.

청와대는 즉각 반발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20일 “현안마다 국회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개최하면 공무원이 어떻게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겠느냐”며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안인 만큼 즉시 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청문회가 정부를 견제한다는 취지에서 벗어나 정쟁으로 흘러 연중 ‘청문회 정국’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내년 말 대선이 다가올수록 ‘정쟁형 청문회’가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당장 야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버이연합 불법자금 지원 의혹 등에 대해 청문회를 열겠다며 정부를 압박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으로 각 상임위에서 현안별로 청문회가 가능해졌다”며 “청문회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어버이연합 문제 등에 대해 강한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국회의 기본 책무인 법안 심사는 제쳐놓은 채 현안만 생기면 장관들을 불러놓고 정쟁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인들도 청문회에 불려다니며 경영에 지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날로부터 15일 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다시 효력을 가진다. 청와대는 거부권 행사 가능성에 대해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지 않고 국회가 정부로 해당 법안을 넘기면 그때 가서 여러 대응 절차를 판단해 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청와대와 여당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전날 새누리당 반대에도 국회법 개정안을 표결에 부친 정의화 국회의장은 “공용 화장실 살인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현안이 발생했을 때 국회가 대처해야 한다”며 “정책 청문회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상임위 차원의 청문회를 남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유승호/박종필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