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은 “레저산업을 키우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데 정부가 규제 잣대를 들이대 손발을 묶으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은 “레저산업을 키우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데 정부가 규제 잣대를 들이대 손발을 묶으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1990년대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강우석 검사 실제 모델인 함승희 강원랜드 사장(65). 검사와 정치인 이력을 지닌 그가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한 지 1년6개월이 지났다. 검사 시절 ‘저승사자’라는 별명답게 그는 취임하자마자 강원랜드 내부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했다. 비리와 횡령 등에 연루된 임직원을 무더기로 징계하고, 일부는 형사고발해 파면하기도 했다. 강원랜드는 개혁 성과를 인정받아 정부 공기업 평가에서 만년 최하위 등급을 벗어났다.

아직도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함 사장은 털어놨다. 그동안 내부 개혁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강원랜드를 레저산업 선두주자로 키워내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레저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에 대해 불만도 내비쳤다. 특히 “카지노를 주요 사업으로 한다는 이유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익의 절반을 기금으로 가져가고 그것도 부족해 세금까지 거두겠다는 건 레저산업을 키우지 말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4년 11월 취임한 뒤 3년 임기의 절반이 지나가는 시점에서 함 사장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함 사장을 지난 13일 역삼동 서울사무소에서 만났다.

▷카지노사업이 생소했을 텐데, 강원랜드 대표는 어떻게 맡게 됐습니까.

“처음 제의를 받고 석 달이나 고민했어요.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육성을 위한 특수 공기업이고, 또 과거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아 이미지가 아주 부정적이었습니다. 개혁하려면 아주 강한 사람이 가야 한다는 주문이 있었죠. 만약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해 돈을 벌어야 하는 임무라면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부패한 조직을 개혁하는 것은 결국 사람 관리이고, 이는 나름대로 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와보니 어땠나요.

“예상대로였습니다. 상장된 주식회사이자 공기업이고 특수목적법인이다 보니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이 얽혀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의 경제 기반을 조성해야 하고, 주주들의 이해관계도 있고, 임직원 5000명의 복지 문제도 있고, 협력업체 문제도 있었습니다. 강원랜드를 관할하는 부처도 인허가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 외에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까지 네 곳이나 됩니다. 이른바 4중 규제를 받는 거죠. 국회 관련 상임위원회도 산업통상자원위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안전행정위 등 세 개이고 이들 상임위 국회의원만 60~70명입니다. ‘감 놔라 배 놔라’ 하며 간섭하는 이해당사자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떻게 문제를 풀었습니까.

“취임하자마자 3무(無) 원칙을 제시했습니다. 무범죄, 무재해, 무분규가 그것이었죠. 카지노사업 특성상 게임이나 도박과 관련한 범죄가 있을 수밖에 없고, 직원이 연루된 일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거엔 대충 내부에서 눈감아주고 넘어가곤 했어요. 취임하고 나서 검사 때 실력을 발휘해 내부 비리를 직접 샅샅이 뒤졌습니다. 적지 않은 임직원을 정직이나 감봉 등 징계 처분했고, 몇 명은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레저산업 선두주자로 키울 것

▷지역 주민과의 갈등도 꽤 심각했을 것 같습니다.

“강원랜드는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폐특법)에 따라 폐광지역 활성화를 위해 설립됐습니다. 태생적으로 지역민 생존을 위해 세운 거라 지역 사람들이 주식 없는 주주나 마찬가지입니다. 번영회, 대책위원회, 상생위원회 등 각종 단체를 구성해 많은 것을 요구하는데 99%는 돈을 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사장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만 붙이면 회사에서 대충 돈을 주고 그런 식으로 갈등을 피해갔어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지역민에게 제가 거꾸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동안 강원랜드가 지역을 위해 쓴 돈이 10조원이 넘습니다. 그런데 주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됐습니까?’라고요.”

▷10조원은 무슨 명목으로 낸 돈인가요.

“폐특법에 따라 영업이익의 25%를 매년 폐광지역개발기금으로 냅니다. 관광진흥기금도 매출의 10%를 냅니다. 사실상 영업이익의 절반을 ‘세금 아닌 세금’으로 납부하게 돼 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폐광기금으로 1500억원을 냈습니다.”

▷그 돈이 다 어디에 쓰입니까.

“폐광이 있는 강원 네 개 시·군(삼척 영월 정선 태백)이 나눠 가집니다. 강원 외에 폐광이 있는 세 지역(충남 보령, 전남 화순, 경북 문경)에도 일부 돈이 갑니다. 정선을 예로 들면 이곳에 흘러가는 돈은 폐광기금 350억원에 지방세인 재산세 200억원을 합해 연간 600억원 정도입니다. 그런데 강원랜드 돈이 흘러들어가는 지역이 10원도 받지 못하는 평창 양양 고성 등보다 눈에 띄게 발전했다고 봅니까. 아닙니다.”

▷이유가 무엇이라고 봅니까.

“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폐광기금 등 강원랜드에서 나오는 돈을 교육세나 농어촌특별세처럼 목적세로 설정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일반재정에 편입돼 시장이나 군수가 알아서 씁니다. 기금관리위원회 같은 것도 없습니다. 기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감사원이 감사 한 번 안 했습니다. 폐광기금으로 10년간 2조원 정도를 냈습니다. 그게 폐특법 취지대로 쓰였나 특검이라도 해야 합니다. 제가 현역 검사라면 지금 당장 수사할 겁니다.”

가족형 복합리조트로 다각화

▷지역 국회의원 등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나요.

“국회의원이 감사원에 감사하라고 얘기해야 정상이지만 정치인도 공범입니다. 선거 때 ‘내가 당선되면 강원랜드 돈을 더 빼앗아 오겠다’는 게 공약입니다.”

▷강원도가 레저세를 거두겠다는 데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용자를 도박범죄자 취급하고 출입 기록까지 관리하면서 레저세를 물리겠다는 건 앞뒤가 안 맞지 않나요? 규제로 묶어 놓고 각종 기금에 세금을 거두는 것도 모자라 레저세까지 하나 더 붙이겠다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짓입니다.”

▷우리나라 레저산업 경쟁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레저는 글로벌 경쟁입니다.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유치하기 위한 한·일 간 경쟁이 치열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레저산업은 성장성이 커 대기업도 앞다퉈 뛰어들고 있어요. 한마디로 레드오션입니다. 이런데도 우리나라는 각종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 손발을 다 묶고 있어요. 레저가 주 사업인 강원랜드를 산업부 산하 석탄사업과에서 담당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차라리 미래산업과나 레저산업과를 설립하는 게 낫습니다.”

▷강원랜드 카지노 매출이 정체된 상황입니다. 어떻게 사업을 다각화할 계획입니까.

“장기적으로 종합 리조트 기업으로 바꿔갈 생각입니다. 마카오의 시티오브드림(COD) 같은 카지노그룹은 인도 중국 등을 겨냥해 30억 인구를 위한 가족리조트 사업을 키우겠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 정도 돈을 투자할 순 없지만 그들이 흉내 내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겨울에 내리는 눈, 높은 산, 맑은 공기 등입니다. 도박 게임 인터넷 등 각종 비(非)약물 중독자를 위한 치유센터도 짓고 음악 스포츠 등을 이용한 힐링 시설을 세울 계획입니다.”

▷강원지역 관광 인프라 개발도 필요하겠습니다.

“강원지역 관광산업이 발전하려면 강원랜드 시설을 어떻게 더 지을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도내 볼거리 먹거리를 키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관광객이 도시를 보러 와야 합니다. 시내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걷다가 잠은 강원랜드에서 자는 식이 돼야 합니다. 그동안 강원도에 몇몇 기업이 골프장과 콘도를 지었다가 막대한 손해를 봤습니다. 그런 시설이 몇 개 더 생긴다고 관광객이 오는 게 아닙니다.”

■ 함승희 사장은…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검사 시절 1년간 조직폭력배 280명을 구속하며 기네스북에 올랐다. 드라마 ‘모래시계’뿐 아니라 영화 ‘범죄와의 전쟁’ 속 조직폭력배 소탕 검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2000년 16대 총선에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노원갑에 출마해 당선됐다. 2008년에는 친박연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다. 2008년 정·관계 인사들과 민간국가정책연구단체인 사단법인 ‘포럼오래’를 설립해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래는 오늘과 내일의 준말이다.

주변에서는 정치를 다시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아직도 한다. 20대 총선 때 출마 제의도 받았다고 했다. 함승희 사장은 “그동안 쌓은 여러 방면의 경험을 살려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사장 임기가 끝나면 포럼활동에 매진할 계획이다.

△1951년 강원 양양 출생 △서울 양정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법시험 22회, 사법연수원 12기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담당 특별수사관 △16대 국회의원(새천년민주당) △친박연대 공천심사위원장 △강원랜드 사장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