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우리 회사에 와서 같이 일하세.”

1974년, 국내 상위 제약회사에 다니던 영업사원에게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신생 업체 사장이 찾아왔다. 중앙대 약대를 졸업한 영업사원은 제약사에 3년만 다니다가 약국을 차릴 생각이었다. 병원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경쟁제품을 알아내는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업체 사장은 만날 때마다 “함께 일하자”고 권했다. 6개월을 고민하다 결단을 내렸다. “회사는 작지만 한번 키워보자.” 42년이 흘렀다. 26세의 영업사원은 어느새 고희를 넘겼지만 16년째 회사 대표를 맡고 있다.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71) 얘기다.

올해 6연임에 성공한 이 사장을 서울 서교동 ‘초마’에서 만났다. 초마는 삼진제약 본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짬뽕 전문점이다. 이 사장은 “오전 11시30분에 와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맛집”이라며 “전날 술을 마시면 해장하러 꼭 들른다”고 소개했다. 감기에 걸린 탓에 그의 목소리가 걸걸했다. “약속을 미루고 쉬시지 그랬느냐”고 하자 “몸이 아파도 지금껏 결근 한 번 한 적 없다”며 웃었다. 그는 “손님이 왔으니 요리부터 먹자”며 탕수육과 깐쇼새우,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근속 42년, 사장만 16년째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 병원 뚫기 위해 쓰레기통 뒤지고 영업 전략 세우려 전국 돌며 '귀동냥'
삼진제약은 진통제 ‘게보린’으로 이름이 알려진 회사다. 동갑내기 친구인 조의환·최승주 회장이 1968년 창업했다. 삼진제약은 지난달 정기주주 총회를 열고 이 사장을 대표로 재선임했다. 2001년 대표에 오른 뒤 여섯 번째 연임이다. 한 회사에 15년 이상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요즘 같은 시절에 사장만 16년째다. 국내 제약업계 최장수 전문경영인이다. 이 사장은 “젊은 사람들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며 “회사가 계속 성장하고 있으니 곧 넘겨줄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장은 겸손하게 연임 소감을 말했지만 경영 성과를 보면 연임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처음으로 사장을 맡은 2001년 삼진제약의 연 매출은 400억원대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2165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이 5배나 성장한 것이다. 영업이익률도 16.6%(360억원)로 10% 미만인 다른 제약사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이 사장은 “외국제약사 물건을 팔지 않고 스스로 제조한 의약품만 판매하는 걸 감안하면 적지 않은 성과”라며 “직원들이 열심히 해줬기 때문”이라며 공을 돌렸다.

이 사장이 주문한 탕수육과 깐쇼새우가 나왔다. 탕수육 소스가 맑고 투명했다. 코를 찌르는 시큼한 향 대신 달달한 향이 입맛을 돋웠다. 통통한 깐쇼새우를 입에 넣자 새우살이 탱글하게 씹혔다. 이 사장이 권하는 소주와 제법 잘 어울렸다.

◆쓰레기통까지 뒤지는 성실함이 무기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 병원 뚫기 위해 쓰레기통 뒤지고 영업 전략 세우려 전국 돌며 '귀동냥'
이 사장은 1974년 삼진제약에 과장으로 입사했다. 최승주 회장은 “약사 출신이 영업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삼고초려했다”고 전했다. 이 사장에게는 그만의 영업비밀이 있었다. “병원 쓰레기통을 뒤지면 무슨 약을 얼마나 쓰는지 영업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간호사와 병원 청소 직원들에게 간식을 주고 친해진 것도 도움이 됐죠. 그렇게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니 고객들도 좋아하고 영업도 수월했습니다.” 당시 영업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삼진제약에서 이 사장의 성실함은 최대 경쟁력이었다.

사장에 오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2007년 국내에서 글로벌 제약사인 사노피아벤티스의 항혈전제 ‘플라빅스’의 특허가 풀렸다. 플라빅스는 연간 1000억원가량 팔리는 대형치료제다. 삼진제약은 플라빅스와 같은 심혈관 질환 치료제가 없었다. 이 사장은 특허 만료 수년 전부터 플라빅스의 복제약(제네릭) ‘플래리스’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는 전국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의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강원 원주, 서울, 부산을 하루 만에 다닌 적도 많았다. 이 사장은 “최대한 많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영업 전략을 세웠다”며 “경쟁사들이 원조 제약사의 특허 침해 소송이 두려워 판매에 주춤하는 사이 공격적으로 마케팅했다”고 설명했다. 이 약은 연간 5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최대 품목이 됐다.

◆“산골 출신에 가난했지만 인복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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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한 잔씩 기울이다 보니 요리 접시의 바닥이 보였다. 이 사장은 부귀새우를 추가로 주문했다. 마요네즈소스가 올라간 부귀새우는 부드럽고 달달했다.

이 사장은 인터뷰 내내 “복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산골 소년(경기 가평군 설악면)이 서울 왕십리 성동고로 유학을 가게 된 것도 “조금만 공부해도 티가 나는 시골 중학교에 다녔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세끼 반찬을 마늘 장아찌 하나로 버티던 ‘고(苦)학생’이었지만 밝은 성격 덕분에 도움을 주는 이가 많았다. 약대를 간 것도 고등학교 은사가 ‘집이 가난하니까 약대를 가는 게 좋겠다’고 권해서였다.

그는 “좋은 직원이 많은 것이 가장 큰 복”이라고 말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는 일괄적으로 약값을 인하했다. 전체 의약품 가격이 평균 14% 떨어졌다. 삼진제약의 의약품 가격은 평균 24.8% 떨어졌다.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플래리스 가격만 33% 하락했다. 이 사장은 “회장에게 보고도 못 하고 집에서 눈물을 흘렸다”며 “매출이 한순간에 3분의 1 토막날 상황이라 막막했다”고 회상했다.

뜻밖의 반전이 일어났다. 노조위원장과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온 것이다. “직원들이 연차를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겠다며 사장을 격려해줬습니다. 너무 고마워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했습니다. 적자가 엄청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하반기가 되니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이 사장은 그해 말 오너들과 논의해 약 8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이 사장과 삼진제약 직원들 사이의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이 사장은 취임 후 노조위원장에게 임금 교섭을 하지 말자고 제안했다. 6개월 동안 서로 얼굴 붉히면서 임금을 협상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는 노조위원장에게 연말에 임금인상률을 발표할 테니 불만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했다. 이 사장은 그해 임금인상률 5%를 발표했다. 평균 2~3%를 인상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월급을 되레 올려줬다. 노조로선 협상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제 삼진제약 노조는 이 사장과 경영을 고민하는 동반자가 됐다.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는 데 남다른 열정을 쏟아부은 덕분이다. 사장 취임 초기에는 20~30명씩 직원을 불러 찜질방에서 대화를 나눴다. 600명이 넘는 전 직원을 만나기 위해 찜질방에만 스무 번 넘게 가는 바람에 탈수증에 걸려 병원으로 실려간 적도 있다

최근엔 직원들을 사장실로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 한다. 이 사장은 “최대한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8~10명씩 조를 편성해 아침식사를 했다”며 “직원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용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팀장이 결재하라”

이 사장은 초마의 대표 메뉴인 짬뽕을 주문했다. 오징어 홍합 등 해물과 돼지고기, 채소가 가득했다. 빨간 국물을 한 수저 떠서 먹었다. 깊이 우러나온 맛이 일품이었다.

이 사장은 최근 사내 의사결정 과정에 변화를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팀장들이 의사결정을 하라”고 지시했다. 임원들에게 결재를 받다 보면 의사결정 속도가 느려지고 젊은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삼진제약을 이끌어나갈 인재를 키우기 위한 목표도 세웠다. 이 사장은 “세상이 빨리 변하는데 결재를 기다리다가 의사결정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많다”며 “팀장들에게 설령 잘못된 결정이더라도 회사를 위하는 마음이었다면 괜찮다고 얘기한다”고 했다.

이 사장은 임기 동안 5000억원대 규모로 회사를 키우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R&D)에도 집중하고 있다. 삼진제약은 먹는 안구건조증 치료제 임상시험 1상을 하고 있다. 최근엔 경기 화성에서 판교로 연구소를 옮겼다. 이 사장은 “최근 제약산업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훌륭한 인재가 많이 오고 있다”며 “필요하면 우수 인력을 유학보내는 등 인재 개발에 전폭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해외 의약품을 수입·판매하지 않고 복제약이더라도 최고 품질로 자체 개발한 의약품으로 승부하는 것이 경영 방침”이라며 “삼진제약이 세계적인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밑거름을 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맞다! 게보린" 37년간 국내 대표 두통약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 병원 뚫기 위해 쓰레기통 뒤지고 영업 전략 세우려 전국 돌며 '귀동냥'
삼진제약은 제약업계에서 후발 주자에 속하지만 두통약 ‘게보린’ 광고로 회사 인지도를 단숨에 끌어올렸다. 1979년 출시된 게보린은 1980~1990년대 하희라 강남길 등 최고 인기 배우들이 모델을 맡았다. ‘한국인의 두통약’ ‘맞다! 게보린’ 등의 광고는 지금도 많은 중장년층이 기억할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올렸다. 지난해 12월부터는 배우 송창의 씨를 내세운 새로운 광고를 선보이고 있다. 게보린은 삼진제약의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효자 의약품 역할을 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도 연간 1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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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 사장의 단골집 초마
3대째 이어온 짬뽕 전문점…'죽기 전에 가봐야 할 집' 방송 소개도


[한경과 맛있는 만남] 이성우 삼진제약 사장, 병원 뚫기 위해 쓰레기통 뒤지고 영업 전략 세우려 전국 돌며 '귀동냥'
서울 서교동에 있는 짬뽕 전문점이다. ‘재료를 불에 볶다’라는 의미의 초마는 3대째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최근 한 케이블TV 프로그램에서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짬뽕집’ 중 하나로 소개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짬뽕(8000원), 짬뽕밥(9000원), 하얀 짬뽕(8000원) 등이 식사 메뉴다. 요리 메뉴로는 탕수육(1만4000원) 깐풍새우(3만원) 부귀새우(3만원) 깐쇼새우(3만원) 등이 있다.

오전 11시30분 문을 열고, 오후 9시에 주문을 마감한다. 매주 월요일 쉰다. 예약은 받지 않고, 배달도 하지 않는다. 요리 메뉴는 포장이 가능하다. 070-7661-8963

조미현/김형호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