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사용법까지 한글…더 많은 판매 기회 놓쳐
정부 시행 규칙 영어 번역률 5.2%…조례 번역판 전무
국가별 통관 규정 잘 몰라…FTA 세금인하 혜택 못받기도
결국 시간이 한참 지난 뒤 홈쇼핑 규정 중 중요한 내용만 태국어로 요약해 전달했다. 성 법인장은 “법조문은 민감한 부분이 있어 일반 기업에서 통째로 번역해주기 어려웠다”며 “영어로 된 규정이 있었더라면 태국법에 많은 한국식 규정이 도입돼 태국에서 국내 상품을 좀 더 많이 팔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수출 지원 법령은 여전히 국내용
중국과 동남아시아에 홈쇼핑을 처음 보급한 것은 한국 홈쇼핑업체다. GS홈쇼핑은 인도와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 최초로 홈쇼핑사업을 시작했다. CJ오쇼핑은 베트남과 필리핀 멕시코에 가장 먼저 진출했다. 시장을 선점해 한국 상품의 수출 창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진출 국가의 정부가 한국식 홈쇼핑과 상품이 맘에 들어 한국 법령을 참고하고 싶어해도 방법이 없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영업 관련 규정인 ‘유통산업발전법’, 면세점 영업 법규인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도 영어로 번역돼 있지 않다. 국내 법령의 89%는 영어판이 있지만 대부분 오래전 번역된 것이어서 최근 개정 내용이나 신설된 법은 제외돼 있다. 총리령과 부처령의 영어 번역률은 5.2%에 불과하고 규칙이나 조례 번역판은 전무하다.
법제처 관계자는 “한국법제연구원을 통해 법규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지만 규정이 수시로 바뀌고 예산과 연구 인력이 부족해 모든 법령의 영어판은 못 내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용’에 머물러 있는 것은 법규만이 아니다. 영어 없이 한글 표기만 돼 있는 수출품도 부지기수다. 해외에 있는 한국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팔리는 화장품조차 주요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사용설명서는 물론 포장용기에 있는 브랜드명까지 한글로 돼 있다. 수출 화장품의 최대 소비자인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 화장품을 살 때 까막눈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별 문화 알면 수출 기회 늘어
수출 국가의 통관 비용을 낮추는 것 역시 풀어야 할 문제로 꼽힌다. 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로 수출할 땐 각종 세금 인하 혜택이 있는데, 국가별로 분류번호 체계가 달라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다. 뚜껑이 있는 프라이팬은 국내산 대부분이 바닥은 스테인리스 재질에 뚜껑은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돼 있다. 한국에선 알루미늄 주방용품으로 분류하지만 태국에선 바닥을 기준으로 스테인리스 제품으로 취급한다. 태국에서 스테인리스로 구분되면 알루미늄일 때보다 세율이 올라간다. 홈쇼핑업계에선 산업통상자원부나 관세청이 해당 정부에 협조를 구하거나 국가별 통관 사례집을 제작해 수출을 지원하길 바라고 있다.
수출대상국 문화를 잘 활용해도 수출을 늘릴 수 있다. 이슬람권 국가의 소비자는 종교 관련 상품을 제작하는 업체에 고마움을 느낀다. 유희왕 GS홈쇼핑 말레이시아법인 차장은 “국내 업체들이 이슬람 기도복(텔레쿵)이나 전통 스카프(두둥) 등을 새로운 수출 품목으로 노려볼 만하다”고 말했다. 정수기 물과 라면에 대해 할랄 인증을 받아 수출을 늘린 코웨이와 농심도 좋은 사례로 꼽힌다.
소비자 특성을 잘 아는 것은 시행착오를 줄이는 방안이다. 중국에서 대박을 친 마스크팩 세트가 태국에선 실패했다. 태국 여성이 화장에 관심은 많지만 마스크팩은 1년에 한두 번 하는 것으로 생각해 100개씩 들어간 마스크팩 세트를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두 개씩 낱개 포장으로 바꾼 뒤 그나마 판매량을 늘릴 수 있었다.
선호하는 파운데이션 색상 톤도 국가별로 다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파운데이션은 ‘21호’지만 중남미와 동남아에선 이보다 어두운 23호 이상이 더 인기다.
방콕·쿠알라룸푸르=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