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구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민주당 후보인 지미 카터 대통령을 꺾었을 때 내건 구호다. 레이건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기반을 깔고, 감세와 규제 완화 등의 정책으로 경제를 회복시킨 보수주의 총아로 평가받는다. 트럼프는 자신이 레이건의 영광을 되살릴 가장 적합한 후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 전문매체 더힐은 이런 야심과 달리 트럼프가 제2의 레이건이 되지 못하고 윌리엄 브라이언 전 연방 하원의원(네브래스카주) 등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들은 역대 대선에 출마해 반(反)이민주의, 반(反)엘리트주의, 반(反)자유무역주의 등 반목과 갈등 공약을 외치다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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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하원의장과 회동 주목

중앙정치 신인이던 레이건 전 대통령이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은 대선 당시 공화당 주류가 추진 중인 이슈들을 공약으로 받아들이고, 당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부자 증세와 자유무역주의 반대, 이민 반대 등 공화당의 전통 이념과 정면 배치하는 공약을 버리지 않는다면 당의 지원을 얻기 힘들고, 그 경우 대선 필패는 불보듯 뻔하다는 주장이 많다. 이는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이 트럼프 지지를 유보하고, 공화당 내에서 보수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제3당 창당론’이 나오는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제3당론은 벤 새스 상원의원(네브래스카)의 주도 아래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물러서지 않고 있어 본선을 앞둔 공화당의 적전 분열 현상이 증폭되고 있다. 공화당 주류는 보수적 가치를 포기할 수 없고,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에 입각한 자신의 공약을 버릴 수 없는 치킨게임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와 공화당 주류 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분수령은 오는 12일이다. 이날 라이언 의장과 트럼프가 워싱턴DC에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가 공약 수정 등 당 주류의 주문에 호응하고, 당 주류는 대승적으로 트럼프를 대선후보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가늠하게 된다.

클린턴에 뒤지는 선거자금 모금

워싱턴 소식통은 “경선에서 자력으로 승리한 트럼프가 공화당 주류와 손잡지 않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선거자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경선 과정에서 4900만달러(약 566억원)를 썼다. 민주당 대선주자로 사실상 확정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쓴 금액(1억8700만달러)의 26%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정책홍보 경쟁이 펼쳐지고 상대 후보 흠집내기가 난무하는 본선은 다르다. 조직과 돈이 없으면 밀린다는 게 미국 내 선거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대선에서 양당 후보가 각각 10억달러 내외의 자금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쓴 금액(5억1600만달러)의 약 두 배다.

클린턴 전 장관은 선거캠프와 외곽 지원단체인 슈퍼팩(Super PAC) 등을 통해 지금까지 3억달러가량의 선거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선거자금에서 크게 뒤지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재산이 100억달러에 달한다며 대선에 10억달러는 쓸 수 있다고 호언했다. 하지만 경제 전문매체 포브스가 추산한 트럼프의 재산은 45억달러다. 이 중 10억달러를 대선에 쓸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나선 거부는 카지노 재벌 셸던 아델선 정도다.

경합주 공략 만만치 않을 듯

트럼프가 돈과 조직을 확보했더라도 걸림돌은 여전히 남는다. 유권자들의 비호감이다. 유력 정치 분석기관인 쿡 폴리티컬 리포트는 “여성과 젊은 층, 무당파, 히스패닉 계층에서 트럼프에 대한 비호감도가 높다”며 “그가 비호감도를 낮추지 못하면 11월 본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라티노 디시즌스가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히스패닉의 호감도는 9%에 그쳤지만 비호감도가 87%에 달했다. 히스패닉은 미국 전체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다. 히스패닉 유권자 중에서 87%의 표를 잃는다면 백인표 67%를 얻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다. 백인층에서 이런 몰표를 얻은 경우는 1984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거의 유일하다.

지역적으로도 트럼프는 불리한 상황이다. 본선에서 이기려면 535명 선거인단 중 과반(270명)을 확보해야 한다. ‘스윙 스테이트(선거 때마다 승리하는 정당이 자주 바뀌는 주)’로 불리는 오하이오 등 10개 주에서 승리해야 한다.

트럼프는 유권자의 학력이 낮고, 백인 비중이 큰 오하이오(선거인단 18명), 버지니아주(13명)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불리는 펜실베이니아(20명)와 미시간주(16명)에서도 보호무역주의 공약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노조 지지 기반이 강한 위스콘신(10명)·아이오와(6명)·뉴햄프셔주(4명), 히스패닉계 인구 비중이 높은 플로리다(29명)·콜로라도(9명)·네바다주(6명) 등에서는 트럼프가 불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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