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왜 쉽게 내요?" "우리 애 인턴 시켜줘요"
학사행정 간섭 '극성'…교수들 수업 차질
서울대 A교수는 중간고사가 끝난 지난 2일 한 학부모의 항의전화에 시달렸다. 이 학부모는 “시험문제가 너무 쉬워 아들이 공부한 것만큼 평가받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A교수는 “단순 지식을 묻는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창의적으로 사고하는지 측정하는 문제여서 충분히 변별력이 있다”고 학부모를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
자녀의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맘’이 대학가에서도 극성이다. 교수들은 수시로 걸려오는 학부모 전화를 응대하는 게 고역이다. 대학들도 헬리콥터 맘 대책을 마련하느라 바빠졌다. 이화여대는 지난 2월 학부모를 위한 인터넷 페이지를 개설했다.
교수들은 학부모의 간섭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학기가 시작되면 “왜 이런 교과서를 수업교재로 쓰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아이가 여행을 갔는데 출석을 보고서 제출로 대체해달라”는 요청은 다반사다. “자녀의 인턴 자리를 구해달라”는 청탁도 들어온다.
대학가에 부는 ‘치맛바람’ 뒤에는 심각한 청년취업난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대학만 보내면 자녀 걱정은 끝’이라고 했지만 요즘은 서울대 학생조차도 취업 재수, 삼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과거 학부모의 가장 큰 걱정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었지만 이제는 취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부모가 자녀를 보살펴야 할 기간이 그만큼 늘었다”며 “헬리콥터 부모는 자신과 자녀를 한몸처럼 여기고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모의 과잉보호가 자녀의 창의성을 말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노현 서울대 연구처장은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했는데도 외국 대학원 면접에 떨어지거나 유학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도중에 돌아오는 학생이 적지 않다”며 “부모에게 떠밀려 틀에 박힌 공부만 하다 보니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창의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성근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은 “문제를 잘 푸는 인재가 아니라 남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며 “자녀들이 스스로 공부하게 하는 것이 자녀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