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차명 BW거래로 부당이득…검찰, 우리기술 전 대표 구속
코스닥시장 상장 업체 대표가 법인자금을 횡령해 차명으로 신주인수권(워런트)을 사들인 뒤 매각해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직접적인 시세 조종 행위가 없었는데도 차명 워런트를 통해 보유 주식을 늘린 뒤 되판 부분을 ‘사기적 부정거래’로 판단한 것이다. 수년 전까지 대주주들이 워런트를 이용해 회사 지분을 늘리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만큼 다른 업체로 수사가 확대될지 주목된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형사5부(부장검사 김도균)는 법인자금을 횡령해 차명으로 신주인수권부사채(BW) 워런트를 취득한 다음 주가 상승기에 매각해 72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코스닥 상장사 우리기술 대표 노모씨(51)를 구속 기소했다고 29일 발표했다. 범행에 가담한 전 부사장 이모씨(47)는 불구속 기소했다. 우리기술은 원자력제어계측기 업체로 ‘알파고 수혜주’로 알려져 있다.

검찰에 따르면 노씨는 2008년 7월 H저축은행을 상대로 20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한 뒤 BW 워런트만을 헐값에 대거 사들였다. 노씨는 차명으로 워런트를 사들인 뒤 신주인수권을 행사해 자신의 회사 지분을 크게 늘렸다. 이후 주가 상승기에 지분을 비싼 값에 되팔아 70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그는 대표이사 소유의 신주인수권 대량 처분 사실이 시장에 알려지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차명으로 거래했다. 외국계 유명 투자회사로부터 회사 인수자금을 차입한 것처럼 허위로 신고한 혐의도 있다.

노씨는 이듬해 10월 9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우리기술 주식 180만주를 추가로 취득하면서 최대주주에 올랐다. 노씨의 보유 지분은 2007년 1%대에 불과했으나 이 같은 방식으로 지분을 헐값에 사들여 한때 50%대까지 늘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유상증자에 참여할 당시에도 사채업자로부터 인수자금 9억원을 빌리면서 예금 등 자기 자금으로 투자한 것처럼 당국에 허위 신고한 것으로 조사됐다.

노씨는 이 과정에서 회사 지분 확보를 위해 회삿돈도 빼돌렸다. 그는 2008년 차명 신주인수권 취득을 위해 법인자금 2억5500만원을 유용하고, 같은 해 10월 유상증자를 통한 주식 취득을 위해 법인자금 총 18억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도 받고 있다. 개인변호사 선임비용 등을 마련하기 위해 종속회사의 공사계약 금액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금융회사를 속여 대출금 17억원을 편취하고 종속회사 법인자금 3억4000만원을 횡령한 혐의(특경법상 사기)도 있다.

검찰은 자체 첩보를 입수해 수개월간 집중적인 수사를 벌였다. 우리기술은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달 초 대표이사를 변경한다고 공시했다. 이번 수사를 계기로 BW 워런트 차명 거래와 관련한 수사가 확대될지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사모 분리형 BW 발행이 허용됐을 당시 대주주가 저축은행에 높은 이자를 주기로 약속하고 워런트만 싸게 사들이는 방식으로 헐값에 지분을 늘리는 일이 많았다”며 “다른 상장사 대주주들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회사의 신주를 미리 정해진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워런트)가 붙어 있는 채권이다. 워런트를 따로 떼어내 매매할 수 있는 분리형 BW는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에 악용된다는 지적에 따라 2013년 9월부터 발행이 전면 금지됐다. 작년 7월부터 공모형에 한해 허용됐다.

정소람/김인선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