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철강 등 '먹구름' 여전…정유는 '햇살'
국내 기업의 신용등급 하락 추세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속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건설 기계 해운 등 ‘수출 절벽’에 부딪힌 중후장대(重厚長大)형 기업의 실적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은 중국 경기 둔화 등 국내 기업을 둘러싼 대내외 불확실성이 올해도 계속되면서 많은 기업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분기 29차례 신용등급 강등

조선·철강 등 '먹구름' 여전…정유는 '햇살'
한국경제신문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의 ‘2016년 1분기 신용등급 변동 현황’을 분석한 결과, 이들 3사는 올해 1분기 기업(회사채) 신용등급을 총 29차례 하향 조정(부도 기업 제외)했다. 평가사별로는 한국기업평가가 14차례, 나이스신용평가가 9차례, 한국신용평가는 6차례였다. 반면 이 기간 신용등급을 올린 건수는 한온시스템(AA-→AA0) 한미약품(A0→A+) 유안타증권(A-→A0) 등 12건에 그쳤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작년 국내 자본시장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기업 신용등급 줄강등 사태가 올해도 이어지는 분위기”라며 “그 여파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회사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한진 두산그룹 등 일부 대기업집단은 실적·재무구조 악화에 시달리는 주력 계열사 때문에 그룹 전체 신용도가 흔들리고 있다. 두산그룹의 경우 지난달 그룹 지주회사인 (주)두산(A0→A-) 두산중공업(A0→A-) 두산인프라코어(BBB+→BBB0) 두산건설(BBB-→BB+) 등 4개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이 무더기로 강등됐다. 이들 회사는 모두 지난해 4500억~1조7000억원에 달하는 순손실(연결 기준)을 냈다.

선영귀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계열사들의 대규모 순손실로 그룹 전체의 재무 안정성이 흔들리고 있는 데다 중단기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의 실적 회복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등급 강등 이유를 설명했다.

한진그룹도 대한항공(A-→BBB+) 한진해운(BB+→BB-) (주)한진(A-→BBB+)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하향 조정됐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한진해운의 부실이 그룹 전체의 위험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라며 “한진해운의 경우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차입금을 제때 갚지 못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했다.

○등급 하락세 지속 전망

조선·철강 등 '먹구름' 여전…정유는 '햇살'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기업 사정이 작년보다 좋아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신용등급 하락세도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신용평가는 작년 말 올해 경영 환경이 어두울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이 전체 평가 대상 업종 22개 중 10개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2015년 6개 업종에서 4개 더 늘어났다. 장기 취약 업종으로 꼽혀온 건설 조선 철강 해운 외에도 디스플레이 은행 신용카드 호텔이 추가됐다.

한국신용평가 관계자는 “조선회사는 해양 플랜트 부문의 부실 가능성이 남아 있고, 철강회사도 철강 소비 둔화세가 지속되면서 해외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주택 분양 열기에 힘입어 반짝 호황을 누린 건설회사에 대해서도 “작년 같은 호실적을 유지하기 어려운 데다 해외 사업에서도 부실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정유회사는 유가 하락에 힘입어 실적·재무구조가 빠른 속도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달 SK에너지와 GS칼텍스의 신용등급을 종전 ‘AA0’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다. 송미경 나이스신용평가 기업평가2실장은 “저유가로 항공유·휘발유 수요가 늘면서 정유사들의 실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고, 적극적인 차입금 감축 노력으로 재무구조도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