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병길 한국건축가협회 신임 회장 "건축가는 '상징'을 만드는 문화 전도사"
“한국에선 건축과 건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건축을 건설을 위한 설계 작업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단어에 담겨 있는 철학은 전혀 다르죠.”

배병길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사진)은 최근 서울 서초동 배병길도시건축연구소 사무실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17일 한국건축가협회 정기총회에서 신임 회장으로 선임된 그는 건축과 건설에 대해 “건설이 ‘건물을 지어 공간을 채운다’는 물리적 개념을 나타낸다면, 건축은 ‘대지 위에 의식과 시간을 축적해 나가는 문화적 행위’란 추상적 개념을 뜻한다”며 “그 때문에 ‘건축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답은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으며, 하나의 건축물이 세워진다는 건 지각변동과도 같은 일이지만 그 중요성을 건축가들조차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배 회장은 중앙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의 1세대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김중업이 이끌던 김중업건축연구소에서 일을 시작했다. 서울 소격동의 ‘국제갤러리’를 시작으로 서울 사간동의 ‘갤러리 현대’, 경기 의왕의 반남 박씨 종가를 재건축한 ‘학의제’ 등 다수의 작품을 설계했다.

한국건축가협회 회장으로서 임기 2년 중 가장 중점을 두는 건 내년 9월3~10일 서울에서 열릴 ‘국제건축연맹(UIA) 2017 서울 세계건축대회’의 성공적 개최다. 1948년 스위스 로잔에서 결성된 UIA는 현재 회원국 124개국으로 건축 분야에서 제일 큰 국제조직이다. 1948년부터 3년마다 한 번씩 회원국을 돌며 열리는 ‘UIA 세계건축대회’는 ‘건축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 건축계 최대 축제다. 배 회장은 “회원국끼리 대회 유치 경쟁이 치열하며, 한국도 세 번 도전 끝에 행사를 열게 됐다”며 “각국에서 약 1만명의 건축가가 모여 건축 관련 전시회와 강연회, 학회 등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고 소개했다.

그는 “UIA 세계건축대회를 계기로 ‘건축가는 문화 전도사’라는 의식을 전파하면서 한국의 건축 위상을 한층 더 높이고 싶다”고 전했다. “국내에선 건설이 건축을 압도하는 게 현실입니다. 6·25전쟁 후 폐허가 된 땅 위에 생존을 위한 공간부터 빨리 확보하는 게 우선시되면서 ‘무조건 높게, 많이 지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어요. 의미와 시간을 축적하며 문화를 담아내는 건축가로서의 제 역할을 발휘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거죠.”

배 회장은 “건축은 공간을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기억을 상징하는 매개체를 만드는 행위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건축물은 건축주와 건축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땅, 시간과 공간 등 여러 관계 속에 얽혀 있는 존재”라며 “어울림을 무시하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점에서 “우린 도심 랜드마크란 이름으로 시각적으로 지나치게 튀거나 웅장해 보이는 디자인만을 중시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은 북한산이나 남산, 한강 같은 천혜의 랜드마크가 있습니다. 자연도 건축의 주체임을 잊으면 안 됩니다. 대다수가 떠올리는 랜드마크란 단어 뜻엔 타인과 경쟁해서 압도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고 봐요. 도시를 기억하고, 길을 알려 주는 등대 역할을 하는 게 진실된 랜드마크의 역할입니다. 이건 만들어지는 것이지 만드는 게 아니라고 봅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