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오치균 화백이 2015년작 ‘뉴욕-센트럴 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오치균 화백이 2015년작 ‘뉴욕-센트럴 파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향집 뒷마당 감나무에 탐스럽게 매달린 감 그림으로 익숙한 오치균 화백(60)이 미국 뉴욕 땅을 처음 밟은 것은 1987년이다. 1980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한 그는 ‘현대미술의 1번지’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브루클린대학에 들어갔다. 하지만 지인에게 사기를 당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세탁소에서 다림질을 하며 숨 막히는 유학생활을 이어가던 그는 짬이 날 때면 TV의 번쩍거리는 불빛만 있는 어두운 방에 처박혀 화폭에 매달리는 것으로 울화를 다스렸다. 극도의 절망과 소외감은 그림이 됐다. 그의 ‘뉴욕’ 시리즈는 죽기 살기로 돌진하는 광인(狂人)의 자화상처럼 이렇게 태어났다.

오 화백이 지난 30년간 뉴욕에서 만든 작품을 한꺼번에 펼쳐보이는 대규모 개인전을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연다. 전시회의 주제는 ‘뉴욕 1987~2016’. 유학 시기(1987~1990년)를 비롯해 개인전 준비를 위해 1992년 다시 뉴욕에 정착했다가 1995년 산타페로 이주하기 전까지의 시기, 2014년 가을 다시 뉴욕을 찾았던 시기 등에 작업한 ‘뉴욕’ 시리즈 100여점을 내걸었다. 국내 화단에서는 보기 드물게 50대 초반에 인기 화가로 부상한 오 화백의 드라마 같은 뉴욕 시절 미학세계를 엿볼 수 있는 자리다.

그의 뉴욕 초기 작품은 침대 위에서 뒹구는 남자의 사지를 비롯해 어두컴컴한 지하철, 슬럼가의 생경한 모습 등이 주를 이룬다. 화려한 도시 풍경이지만 힘겨운 자신의 삶을 담아내서인지 분위기는 어둡고 극도의 쓸쓸함마저 묻어 있다. 노숙인이 쓰러져 있는 모습을 그린 1987년작 ‘홈리스(Homeless)’, 좌절한 인물의 형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피겨(Figure)’ 시리즈 등은 검은색 톤으로 화면을 장악해 자신의 막막한 삶을 은유적으로 묘사한 대표작이다. 오 화백은 “당시엔 무의식적으로 구도에만 집중했는데 머리로 해석하지 않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만을 스스로 충동질해 작업했다”고 회고했다.

1990년대 중반 그의 뉴욕 작품들은 검은색을 자제한 탓에 색채가 이전보다 다소 밝아졌다. 작가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나 9·11테러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월드트레이드센터 빌딩에 올라 뉴욕 시내의 바둑판 같은 건물을 주시했다. 붓 대신 손가락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를 두껍게 칠하는 지두화(指頭畵)기법을 활용해 건물 속에서 첨단 문명의 아우라를 잡아냈다. 색채를 칠해 넣는 게 아니라 물감을 발라올림으로써 도시 문명의 역동적인 모습을 살려낸 것이다.

화면에 물감만 배어 있다면 작품이 아니라 ‘낙서’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는 오 화백은 “뉴욕의 다양한 표정에 집착하지 않고 도시의 ‘맥박’을 좇았더니 묘한 힘이 느껴졌다”며 “당시 뉴욕의 다양한 건물을 예술로 승화시킨 것도 이런 에너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West Broadway.
West Broadway.
Central park
Central park
Central park
Central park
Empire State
Empire State
2014년부터 올해 초까지 작업한 ‘뉴욕’ 시리즈는 이전 작품과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오 화백은 “1980~1990년대 뉴욕 작업이 검은색 위주로 인간과 문명의 관계를 들춰냈다면 최근에는 화려한 문명 속에서도 살아 숨쉬는 자연을 화폭에 옮겼다”고 말했다. 사람이나 건물보다는 오색 단풍과 나무, 사람, 파란 하늘에 주안점을 두고 도시와 자연을 하나의 끈으로 묶었다는 것. 진홍빛 단풍나무로 치장한 ‘센트럴 파크’, 울긋불긋한 가로수 나무에 가려진 ‘브로드웨이’, 도심의 파란 하늘 아래 펼쳐진 ‘웨스트 빌리지’ 등의 작품에서는 이전의 뉴욕 작업에서 보지 못한 포근함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02)720-5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