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1990년대 콜롬비아는 마약과 이를 둘러싼 폭력이 난무하는 나라였다.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는 세계 최대 마약조직인 메데인카르텔을 이끌며 자신에게 방해되는 것은 모두 제거했다. 그는 1980년대 정부 요인과 언론인, 법조인, 일반인을 막론하고 살상을 저지르며 사실상 콜롬비아를 지배했다. 콜롬비아 차세대 대표 작가군에 이름을 올린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43)가 쓴 장편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문학동네)은 마약의 나라에 만연하던 공포에 주목한 작품이다.

주인공 안토니오 얌마라는 젊은 법학교수로 아버지뻘 되는 남자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종종 당구를 즐긴다. 어느날 리카르도는 거리에서 괴한들에게 총격을 당해 숨지고, 함께 길을 걷던 안토니오도 총상을 입는다. 사고 후유증에 심신이 피폐해진 안토니오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 리카르도가 삶의 마지막 순간에 들었던 카세트테이프를 바탕으로 그의 과거를 추적한다.

안토니오가 리카르도의 딸 마야와 만나면서 시점은 한참 전으로 바뀐다. 비행기 조종사였던 리카르도는 콜롬비아에 평화봉사단원으로 왔던 미국 여성 일레인과 결혼해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마약조직의 사주를 받아 경비행기로 마약을 운반한 리카르도는 미국 마약단속국 요원들에게 체포돼 20년 동안 감옥에 갇힌다. 남편과 함께 성탄절을 보내려던 일레인은 급작스러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다.

리카르도가 듣던 테이프는 아내가 탔던 비행기의 블랙박스였다. 테이프 속에는 비행기가 통제력을 잃어 조종사들이 당황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담겼고 사고 직전에는 강렬한 소음이 가득 차 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할 때 일어난 소음, 거리를 공포에 뒤덮이게 한 폭발음과 총성 같은 소음은 모두 콜롬비아의 암울한 과거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작가는 안토니오의 경험을 빌려 그 시대가 지닌 ‘공포의 역사’를 정밀하게 재현한다.

책을 옮긴 조구호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과 외래교수는 “이 소설은 마약, 폭력, 부정부패로 점철된 콜롬비아 현대사와 한 젊은 지식인의 고뇌가 절묘하게 버무려진 작품”이라며 “특정 사회와 인간, 그들의 삶을 지배하던 공포에 대한 기억을 절묘하게 형상화했다”고 평했다. 368쪽, 1만3500원.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