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Insight] 찰스 코크 코크인더스트리즈 회장…원유만 팔던 아버지 회사 거침없는 M&A로 '폭풍성장'
미국의 복합기업 코크인더스트리즈는 ‘벅셔해서웨이의 비상장 버전’으로 종종 불린다.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처럼 능수능란한 인수합병(M&A)을 통해 회사 규모를 대폭 키워왔기 때문이다. 원유 유통과 정제 사업으로 시작한 코크인더스트리즈는 지금 원자재 거래, 섬유, 비료, 펄프, 화학, 건축자재, 목장, 금융, 전자부품, 식품 등에 이르는 60여개 계열사, 10만여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다. 카길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사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코크인더스트리즈가 상장했다면 시가총액이 벅셔해서웨이와 맞먹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크인더스트리즈 회장과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는 찰스 코크 역시 버핏 회장과 비슷한 면이 많다. 1935년생(올해 81세)으로 1930년생인 버핏과 비슷한 연배다. 뚜렷한 투자철학, 경영철학을 갖고 있는 점도 닮았다. 코크 회장은 2007년 《성공의 과학》과 지난해 《좋은 이익》이란 책을 써냈다. 아버지 회사를 물려받은 것이 버핏과 다른 점이지만 이후 회사 규모를 수천배 키운 능력은 무시할 수 없다는 평가다.

고된 노동 시켰던 아버지의 배려

1940년 코크인더스트리즈의 전신인 우드리버오일을 세운 아버지(프레드 코크) 덕분에 코크 회장은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4남 중 둘째였다. 하지만 다른 부잣집 아이들처럼 편하게 자라진 못했다고 코크 회장은 작년 마켓플레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아버지는 코크 회장이 여섯 살 때부터 일을 시켰다. 여름이 덥고 습하기로 유명한 미국 캔자스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민들레를 심어야 했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건초 묶기, 마구간 청소하기, 소 우유 짜기 등의 일이 주어졌다. 아들이 나태한 부잣집 도련님이 되는 것을 막아주려 한 아버지의 배려였다. 코크 회장은 “친구들이 모두 수영장에서 즐겁게 놀 시간에 나는 땅을 갈았다”며 “‘아버지는 왜 이렇게 나를 미워할까’라며 원망하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코크 회장은 아버지의 모교인 MIT에 들어가 기계공학과 화학공학으로 석사까지 받았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은 아이였다. 기억력이 특출나게 좋았고 수학에 자질이 있었다. 선생님들이 칠판에 수학 문제를 적을 때마다 그는 왜 이렇게 쉽고 당연한 것을 칠판에 적어가면서까지 풀어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1960년 MIT를 졸업하고 컨설팅업체인 아서디리틀에 들어갔다. 그는 “내게는 환상적인 곳이었다”며 “다양한 산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보스턴엔 재즈바도 있고 여대생도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1961년 고향인 캔자스주 위치토로 돌아가야만 했다. 아버지가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회사를 팔아버리겠다”고 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드리버오일에서 록아일랜드오일로 이름이 바뀐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고, 1967년 아버지가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서른두 살에 회사를 이어받았다.

비상장 유지하며 장기적인 투자

비상장이라 실적을 발표하지 않는 코크인더스트리즈의 연결 매출은 1000억달러(약 122조원)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967년 물려받을 당시의 회사 매출 약 2000만달러(약 245억원)에서 5000배가량 커졌다.

공격적인 M&A를 통해서다. 나일론과 스판덱스 등을 개발한 듀폰의 섬유사업부문인 인비스타도 코크가 샀다. 전자부품회사 몰덱스, 제지회사 조지아퍼시픽, 일회용 컵으로 유명한 딕시컵스 등이 모두 코크 소속이다. 그렇다고 문어발식 확장은 아니었다. 기존의 기술과 노하우,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관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혀나간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코크 회장은 항상 장기적인 안목을 강조한다. 코크인더스트리즈가 비상장을 유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상장기업은 애널리스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분기마다 단기 이익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조금이라도 못 미치면 주가가 급락한다”며 “코크인더스트리즈가 수백억달러 규모의 M&A를 성공적으로 어이갈 수 있는 이유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가치 창출’을 중시한다. 이익 최대화로 단기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진 몰라도, 사회와 고객에 대한 기여 없이는 오래도록 살아남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인수대상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업이라면 과감히 인수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오히려 잘나가는 기업에는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코크 회장의 철학이 빛을 발한 것은 2000년대 초 질소비료 생산업체 팜랜드를 인수했을 때가 대표적이다. 질소비료는 농업 관련 제품이 아니라 에너지 관련 제품에 가까웠다. 주요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질소비료 생산비용 역시 급증했다. 당시 미국 비료 생산업체의 40%가 파산했다. 모두가 겁에 질려 있을 때 코크 회장은 10년 뒤의 일을 내다봤다. 가장 효율적인 공장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업황이 개선되면 살아남은 소수 업체들이 큰 이익을 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코크인더스트리즈는 헐값에 팜랜드를 인수했고 10년간 5억달러를 투자해 공장과 인프라를 업그레이드했다. 이후 셰일산업이 뜨면서 미국에서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가 쏟아져나왔고, 질소비료의 채산성은 급격히 개선됐다.

열렬한 시장경제 지지자

코크 회장은 열렬한 자유시장경제주의자다. 정부의 역할은 엄격히 제한돼야 하고, 민간에 최대한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아버지가 옛 소련에서 사업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소련 엔지니어들이 스탈린에 의해 모두 숙청된 경험이 있다. 그때부터 반공주의자로 변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정부 규제도 문제지만 보조금 등으로 기업을 도와주는 ‘기업 복지’도 문제”라며 “기업들이 정부에 기대지 않고 철저하게 실력으로 겨뤄야 사회에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장 중심 경영’이란 이름으로 일상 경영활동에도 이를 적용한다. 비전, 미덕과 재능, 지식 프로세스, 의사결정 권한, 인센티브라는 요소가 긴밀히 상호작용할 때 시장 중심 경영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지나치게 시장 원리를 강조하는 탓에 지탄을 받는 일도 많다. 그는 공화당과 티파티에 막대한 후원금을 내고 있으며, 보수주의 싱크탱크인 카토(CATO) 연구소와 미국기업연구소(AEI)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