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vs 증권사 승부 '운용 능력'서 판가름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은 14일 금융 당국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은행에도 투자 일임을 허용한 것과 관련해 "대승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다음 달 14일 시작하는 ISA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은행업계에 투자 일임을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현행 규정상 증권업계만 할 수 있던 일임형 ISA 판매가 은행에서도 가능해졌다.

◆ "ISA 도입 취지, 국민 재산 증식"

세제 혜택 상품인 ISA는 신탁형과 일임형으로 나뉜다. 투자자(가입자)가 일일이 편입 상품을 지정하는 방식이 신탁형, 금융회사가 투자자에게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상품의 편입·교체를 대신 해주는 것이 일임형이다.

금융위는 "은행에서는 한 가지(신탁형) 형태의 ISA만 가입할 수 있다면 투자자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이라며 "세제 혜택이 주어진 ISA에 대해 은행과 증권이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은행에도 투자 일임을 허용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그동안 증권업계는 은행에 ISA 투자 일임을 허용하는 것을 반대해왔다"며 "하지만 ISA 도입 취지가 '국민 재산 증식'에 있는만큼 업권 이익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 당국과 업계가 손잡고 만든 ISA를 보다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결정을) 수용하기로 했다"며 "다만 앞으로는 은행업계가 포괄적 투자 일임업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구두 합의했다"고 밝혔다.

비록 구두 합의지만 서로 간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합의는 지켜질 것이라고 황 회장은 강조했다.

투자 일임업은 증권회사나 자산운용회사가 투자자의 돈을 관리, 운용하는 금융투자업 고유 업무로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다.

◆ "증권사 비대면 일임 허용…가뭄의 단비"

금융위는 이날 또 은행에 비해 지점 수나 판매 인력이 부족한 증권업계를 위해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일임 계약을 허용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증권사는 일대일 대면 계약으로만 일임형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금융위 결정은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증권업계를 위한 안배인 셈이다.

현재 은행의 전체 지점 수는 7318개, 증권사는 1217개로 은행이 압도적 우위에 있다. 펀드 판매 라이선스를 가진 인력도 은행이 9만3000명, 증권사는 2만3000명에 불과하다.

황 회장은 "비대면 일임 계약 허용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다"며 "이를 통해 판매망 열세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비대면 일임 계약을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ISA 판매가 본격화하면 결국 승부는 '운용 능력'에서 판가름 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초반에는 접근성이 높은 은행이 앞서갈 수 있지만 ISA가 정착하면 상황 대처 능력이 뛰어난 증권사가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ISA에 가입한 후 실적(수익률)이 나쁘면 곧바로 계좌를 이동하는 투자자가 많아질 것"이라며 "채널에 강한 은행과 운용에 강한 증권사 간 아름다운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 회장은 또 ISA 원조인 영국의 사례와 한국형 ISA의 진입·세제 혜택 제약 등을 감안해 ISA 시작 5년 후에는 약 150조원 정도의 자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추정했다.

김아름 한경닷컴 기자 armij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