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가와 개인 자산가들이 다시 채권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미국 경제의 성장 둔화 우려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일본 엔화와 금값이 급등하면서 같은 안전자산인 국내 채권 가격도 연일 상승 랠리를 펼치고 있어서다. 회사채시장도 선취매 수요로 활기를 되찾았다.
"믿을 건 역시 채권 뿐"…뭉칫돈 몰린다
◆회사채 수요 예측에 뭉칫돈 유입

1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국내 채권형펀드 수탁액(설정 원본 기준)은 86조9000억원으로 작년 말 85조2000억원에서 한 달 새 1조7000억원 불어났다. 월말 기준 사상 최대다. 지난해 12월 1조5000억원 줄어들며 주춤하다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같은 기간 주식형펀드 수탁액 증가폭(81조3000억원→82조30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

한 자산운용사의 채권펀드매니저는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작년과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인 채권에 다시 뭉칫돈이 들어오고 있다”며 “작년 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세계 경기 회복으로 채권 가격이 하락할 것이란 일각의 전망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관투자가의 채권 매수 열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회사채시장은 더 극적이다. 한국경제신문 자본시장 전문매체인 마켓인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기업 12곳이 모두 1조7700억원어치 회사채 투자자를 모집한 결과 5조4800억원의 청약금액이 몰렸다. 모집금액의 3.1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청약 경쟁률 기준으로 2014년 10월(3.27배) 이후 최고이자 2012년 수요예측(사전 청약) 제도 시행 이후 두 번째로 높다. 작년 12월 경쟁률(1.51 대 1)과 비교해도 두 배를 웃돈다. 손소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거듭 경신하면서 국고채보다 이자수익이 다소 높은 우량 회사채의 투자 매력이 부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발행 기업의 75%에 해당하는 9개사는 풍부한 투자 수요를 반영해 조달금액을 예정보다 대폭 늘렸다.

◆사라지는 금리 인상 재료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시장금리는 올 들어 가파른 하락세다. 중국 경제 성장률이 2015년 6.9%로 25년 만에 7% 밑으로 떨어지고 미국의 4분기 성장률 역시 전기 대비 연율 0.7%로 부진하게 나오자 수출 중심의 국내 경기 회복에 대한 비관론이 강해진 결과다. 경기침체는 각국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등 양적 완화 정책을 강화하면서 채권값 상승(금리 하락)을 가져올 수 있다.

지난 2일과 3일 이틀 동안 국고채 3년물 금리가 한국은행 기준금리(1.50%) 밑으로 떨어지는 역전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은이 수개월 내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감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도 이 같은 기대를 부추겼다. 지난달 한은은 올 성장률 전망을 하향(3.2%→3.0%)했지만 기준금리는 7개월 연속 동결했다. 다음 금리결정 회의는 오는 16일 열린다.

국내외 채권시장 전문가 대다수는 글로벌 경기 침체 심화로 미국의 기준금리가 종전 예상보다 더디게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경우 한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외국인 자금 유출에 대한 우려를 덜 수 있다. 기준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탄력을 받고 있다. 김명실 KB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만약 1분기에 금리 인하가 단행되지 않으면 경기둔화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