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업계는 작년 풍성한 한 해를 보냈다. 제품생산과 수출량 모두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영업이익도 2011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는 올해 초만 해도 계속되는 듯했다. 최근엔 이상기류가 나타났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던 정제마진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잠깐 하락’에 그친다면 좋은 실적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작년만큼의 실적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정유업계는 정제마진이라는 변수를 극복하기 위해 원유 수급처 다변화와 석유화학분야 확대에 나서고 있다.

◆불안한 흐름 보이는 정제마진

정유사 정제마진의 기준이 되는 싱가포르 크랙마진(고도화 설비에 투입되는 원료인 벙커C유와 석유제품 가격 간 차이)은 올 들어 지난달 22일까지만 해도 배럴당 10달러대에서 움직였다. 작년보다 더 높은 수준이었다. 1월 다섯째주(25~29일)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배럴당 9.2달러로 하락했다. 2월 첫째주(1~5일)에는 8달러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주당 평균 기준으로 전고점이었던 지난달 넷째주(18~22일)의 10.4달러와 비교하면 25%가량 하락했다.

정제마진이 최근 하락세로 돌아선 것은 미국 내 휘발유 재고 급증, 등·경유의 계절적 비수기 진입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탓이다.

원재료인 원유가 배럴당 30달러 안팎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휘발유, 등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이 약세를 보이자 정제마진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너지정보청(EIA)이 최근 발표한 1월 다섯째주 미국 내 휘발유 재고 증가량은 590만배럴로 시장 예상치(170만배럴)를 훨씬 웃돌았다.

◆정제마진 전망 엇갈려

작년 정유업계는 휘발유와 경유, 등유, 벙커C유 등 모두 11억2000만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했다. 11억배럴을 넘어선 것은 사상 처음이다. 전년에 비해선 8.7% 늘었다. 물량 기준 수출도 4억7700만배럴로 전년보다 6.4% 증가했다. 사상 최대 규모다. 물론 저(低)유가로 인해 제품단가가 싸지면서 수출액(30조원)은 전년보다 40% 감소했다.

정유 4개사의 영업이익은 총 4조7925억원으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나타냈다. 2014년 유가 급락으로 744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것과는 정반대 실적이다. 정제마진이 큰 폭으로 확대된 덕분이다. 작년 평균 싱가포르 크랙마진은 배럴당 7.7달러로 전년(5.9달러)보다 30.5% 상승했다. 업계 관계자는 “작년 흐름을 올해도 이어가려면 정제마진이 도와줘야 한다”며 “연초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어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시장전망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한승재 동부증권 연구원은 “등·경유 가격조정이 심화되고 있어 올해 정제마진이 작년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이 설비투자를 대폭 축소키로 하는 등 공급 측면에서 국내 정유업계에 유리한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엑슨모빌은 올해 설비투자를 작년보다 25% 줄어든 232억달러로 책정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본업’이냐, ‘부업’이냐

정제마진의 변화라는 변수에 대응하는 정유업계의 움직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SK이노베이션과 현대오일뱅크는 ‘본업’인 정유부문의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원유 수급처 다변화와 신속한 의사결정에 승부를 걸었다. 작년 3분기 이후 중동산보다 유럽산 원유값이 더 싸지자 SK이노베이션은 주요 원유 수급처를 중동에서 유럽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SK이노베이션의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은 2014년 91.0%에서 작년에 72.8%로 낮아졌다.

현대오일뱅크는 고부가가치 석유제품 생산 확대에 나서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똑같은 원유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을 더 많이 뽑아내는 능력을 뜻하는 고도화율이 국내 최고인 39.1%에 달한다.

GS칼텍스와 에쓰오일은 ‘부업’이라고 할 수 있는 석유화학 부문 확대로 정제마진 변동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GS칼텍스는 멕시코에 복합수지 생산시설을 2017년 준공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에쓰오일은 2018년부터 온산공장에서 올레핀 계열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생산설비 건설공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