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기술집약 상품 도전…LM가이드 국산화에 성공
지난해엔 첨단로봇 진출…6축 다관절 로봇 본격 생산
진영환 회장 '정도 경영'…50여년 전부터 상생 추구
첫 번째 혁신은 쌀통이었다. 1970년대 배우 이효춘 씨가 광고를 한 삼익쌀통은 우리 국민의 70~80%가 사용한 국민 히트 상품이다. 50대 이상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두 번째 혁신은 1984년. 진영환 회장이 주력업종을 노동집약적인 상품에서 기술집약적인 상품으로 바꾸기 위해 선택한 직선베어링 LM가이드였다. 이 분야 진출을 위해 일본 THK를 찾았을 때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조그마한 기업에 당시 전 세계 1위를 하는 기업이 판매권이나 기술을 줄 리 만무했다. 진 회장은 그때 줄 생산에서 얻은 신뢰를 이야기하며 기회를 달라고 매달렸다. 시범적으로 한국에서 한번 팔아보라고 기회를 얻은 삼익THK는 한국에 이미 진출한 일본의 에이전트보다 좋은 실적을 내 한국 내 판권을 획득했다. 끊임없이 신뢰를 심어준 끝에 1991년 기술제휴를 얻어냈고 1996년에는 일본 THK의 자본 투자까지 받아냈다. 하지만 판매에만 만족했다면 오늘의 로봇기업 삼익THK는 없었다.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국산화에 도전한 것이다. LM가이드를 부품으로 한 메카트로닉스 분야에도 진출해 회사의 주력군으로 만들었다.
세 번째 혁신은 2014년 말 이루어졌다. 경북창조경제센터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함께 6축 다관절 수직 로봇 제작 협약을 맺었다. 또 한 번의 기업혁신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진 회장은 “반도체 공정에 사용되는 웨이퍼 트랜스퍼 로봇(WTR)과 디스플레이 공정의 LCD(액정표시장치) 트랜스퍼 로봇(LTR)으로 대기업과 신뢰를 쌓으며 로봇 기술을 개발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6축 다관절 로봇은 정부가 ‘7대 상생협력 신사업 프로젝트’의 하나로 추진 중인 ‘제품조립 및 제조라인용 다관절 로봇 개발’ 사업의 결실이다. 삼익THK가 지난해 2월부터 개발에 나선 이 제품은 삼성전자가 제어센서 기술과 내구 신뢰성 평가지원을, 한국로봇융합연구원이 실용화 기술 및 장비 지원을 했다. 삼익THK는 부품 이송 조립, 검사, 포장 등 제조라인 자동화를 위한 제품 설계 및 상품화를 맡았다. 제품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 제품은 6개의 관절을 이용해 자유롭고 유연하게 움직이며 생산과 조립라인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등 정밀한 작업을 요구하는 전자제품 조립에도 유용하다.
이 회사는 경북대 연구소와 의료용 로봇도 개발 중이다. 줄과 쌀통에서 LM가이드와 메카트로닉스, 산업용과 의료용 로봇까지 삼익THK의 혁신은 멈추지 않고 있다. 현재 다관절 로봇 등 전 세계 제조용 로봇시장 규모는 지난해 107억달러 규모이다. 연평균 22%씩 성장하고 있다. 국내시장 규모는 세계 5위 수준이다.
다관절 로봇 국산화로 현재 대부분 외산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다관절 로봇 시장에서 수입대체 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관절 로봇은 IT분야는 물론 중공업, 의료, 바이오, 방위산업 등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로봇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삼익THK의 역사는 우리나라 산업발전 방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기술집약적 산업으로 주요 생산제품을 변경해 혁신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매출은 2300억원을 기록해 전년도(1890억원)보다 22% 성장했다.
50여년간 네 가지 혁신적인 아이템으로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매출이 신장된 비결에 대해 진 회장에게 물었다. “기업경영의 핵심은 신뢰경영입니다.” 기술적 신뢰와 경영의 신뢰를 통해 고객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삼익THK는 다관절 로봇을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제품 생산라인에 우선 공급하고 국내 시장에서 안정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은 뒤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잠재적 로봇시장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국내 LM가이드 시장에서 삼익THK가 40% 이상의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비결도 고객에게 신뢰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명인 삼익도 석 삼(三)자에 더할 익(益)으로 생산자, 소비자, 이해관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기업이 되겠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회자되는 화합과 상생의 개념을 50여년 전에 이미 가지고 있었다.
삼익THK는 영업활동에 로비를 하지 않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진 회장의 경영 방침이 정도경영이기 때문이다.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며 신뢰를 주는 길이라는 정도 투명경영이 삼익THK의 경영 철학이다.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는 진 회장은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들 하지만 어려울 때 대비를 하려면 늦다”며 “항상 잘될 때 미래를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