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사업'만 28년째 원격의료] 스마트폰 진료상담 가능한데…"처방은 의사 얼굴 보고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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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원격의료 사업' 동행해보니
오래 누워있는 욕창 환자, 의사 처방 지시서 없인 방문 간호사가 소독도 못해
원격의료 관련 법안 2009년 이어 자동폐기 위기
오래 누워있는 욕창 환자, 의사 처방 지시서 없인 방문 간호사가 소독도 못해
원격의료 관련 법안 2009년 이어 자동폐기 위기
“혈당 수치가 높다고 음식 섭취량을 무조건 줄이면 안 됩니다. 병원을 한 번 방문하세요.”
병원에 다녀가라는 의사의 말에 정모씨(76)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구 대명동에 사는 그는 지난달 22일, 방문 간호사인 이미화 한국요양그룹 간호사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인근 병원 의사의 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데다 관절염까지 있어 걷기가 쉽지 않아 평소에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당뇨약을 처방받거나 간호사에게 간단한 처치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2년 의사와 의료인(의사, 간호인) 간 원격의료가 허용돼 간호사의 도움으로 의사와 상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법에 가로막혀 있다.
같은 날 이 간호사가 방문한 김모씨(76)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김씨는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골반이 부러진 뒤 근육이 오그라들어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부인 이모씨(75)는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 욕창이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간단한 처치도 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욕창 사진을 찍어 다시 병원을 방문해 의사에게 보여주고 지시서를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1988년 서울대병원, 한림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2010년까지 전국적으로 33차례 시범사업이 이뤄졌다. 최근 5년 동안 이뤄진 시범사업을 합치면 40차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8년째 시범사업만 반복하고 있다. 본격적인 원격의료 도입은 여전히 요원하다. 원격의료는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를 활용해 의사가 오지에 있는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원래 취지다. 하지만 원격의료 도입으로 경영난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의사들과 이에 동조하는 야당 등의 반대로 의사의 처방과 진단을 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시범사업’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4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욕창 관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와 섬 등 의료 서비스 소외지역 환자에 한해 원격 진단과 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사가 간호사 등 의료인에게 직접 지시를 내려 환자를 돌보게 하거나 환자 스스로 의사의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내달 께 임시국회가 끝나면 의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2009년 처음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래 자동 폐기만 두 번째가 될 전망이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의사가 직접 환자를 봐야 의료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7일 복지부가 원격의료 서비스 대상과 참여 기관을 확대하는 내용의 ‘제3차 시범사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의사협회 등의 반대가 완강해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다.
주요 국가는 원격의료 사업을 의료산업의 새로운 기회로 판단하고 관련 시스템과 기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도 원격의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원격의료 사업 확대와 해외 병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랜스패어런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원격의료 시장은 143억달러(2014년 기준)에서 2020년께 363억달러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은 “세계적으로 의료 분야에서도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IoT)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원격의료에 필요한) 원격 모니터링 등이 의료법 등의 제도에 막혀 있으면 국내에서 이들 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대구=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병원에 다녀가라는 의사의 말에 정모씨(76)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대구 대명동에 사는 그는 지난달 22일, 방문 간호사인 이미화 한국요양그룹 간호사와 함께 스마트폰으로 인근 병원 의사의 상담을 받는 중이었다. 당뇨와 고혈압을 앓고 있는 데다 관절염까지 있어 걷기가 쉽지 않아 평소에도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 이상 당뇨약을 처방받거나 간호사에게 간단한 처치를 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2002년 의사와 의료인(의사, 간호인) 간 원격의료가 허용돼 간호사의 도움으로 의사와 상담할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진단과 처방’은 여전히 법에 가로막혀 있다.
같은 날 이 간호사가 방문한 김모씨(76)의 상황은 더 심각했다. 김씨는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왼쪽 골반이 부러진 뒤 근육이 오그라들어 누워만 있는 상태였다. 부인 이모씨(75)는 “오랜 시간 같은 자세로 누워 있어 욕창이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다. 간호사가 간단한 처치도 하지 못했다. 간호사가 욕창 사진을 찍어 다시 병원을 방문해 의사에게 보여주고 지시서를 받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1988년 서울대병원, 한림대병원, 경북대병원 등에서 처음 시작됐다. 이후 2010년까지 전국적으로 33차례 시범사업이 이뤄졌다. 최근 5년 동안 이뤄진 시범사업을 합치면 40차례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28년째 시범사업만 반복하고 있다. 본격적인 원격의료 도입은 여전히 요원하다. 원격의료는 스마트폰 등 통신기기를 활용해 의사가 오지에 있는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진단하고 처방해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게 원래 취지다. 하지만 원격의료 도입으로 경영난이 가중될 것을 우려하는 의사들과 이에 동조하는 야당 등의 반대로 의사의 처방과 진단을 받지 못하는 ‘반쪽짜리 시범사업’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2014년 4월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욕창 관찰 등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와 섬 등 의료 서비스 소외지역 환자에 한해 원격 진단과 처방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의사가 간호사 등 의료인에게 직접 지시를 내려 환자를 돌보게 하거나 환자 스스로 의사의 처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내달 께 임시국회가 끝나면 의료법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2009년 처음 정부가 의료법 개정안을 제출한 이래 자동 폐기만 두 번째가 될 전망이다.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의사가 직접 환자를 봐야 의료사고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27일 복지부가 원격의료 서비스 대상과 참여 기관을 확대하는 내용의 ‘제3차 시범사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의사협회 등의 반대가 완강해 제대로 시행될지 의문이다.
주요 국가는 원격의료 사업을 의료산업의 새로운 기회로 판단하고 관련 시스템과 기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 등도 원격의료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원격의료 사업 확대와 해외 병원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트랜스패어런시마켓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원격의료 시장은 143억달러(2014년 기준)에서 2020년께 363억달러로 급팽창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학종 분당서울대병원 의료기기연구개발센터장은 “세계적으로 의료 분야에서도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IoT)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며 “(원격의료에 필요한) 원격 모니터링 등이 의료법 등의 제도에 막혀 있으면 국내에서 이들 산업이 성장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고 말했다.
대구=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