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미묘한 변화를 잡아냈죠"
소설가 윤이형 씨(40·사진)는 지난해 단편 ‘루카’로 제5회 문지문학상, 제6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을 받았다. ‘루카’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성소수자 문제를 소재로 삼아 여러 층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압축된 서사 구조로 풀어냈다”고 호평받았다. 2005년 등단해 공상과학소설(SF)에 등장하는 요소를 자주 사용했던 그는 점차 인간관계 속에서 보이는 미묘한 순간과 이로 인한 내면의 변화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 출간된 《러브 레플리카》(문학동네)는 ‘루카’를 비롯해 그가 2011년부터 4년 동안 발표한 작품을 모은 소설집이다.

윤씨의 작품세계 변화를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은 표제작인 ‘러브 레플리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혐오감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거식증 환자 이연과 그녀가 고백한 상처를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여버린 허언증 환자 경의 이야기다. 굳게 믿었던 사람에게 속마음을 모두 보여준 순간, 그에게 비치는 당혹감이 소설을 관통하는 이미지다. 이연의 경험 때문에 그의 복제품(레플리카)이 돼버린 경의 모습을 보면 우리도 누군가의 복제된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무료한 밤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면 페이스북 화면에 예전에 알던 사람들의 얼굴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보는 순간 경에게 찾아오는 최초의 감정은 그리움이나 반가움이나 회한이 아니라 의혹이었다. 나는 예전에 정말로 저기에 있었던 것일까.”(‘러브 레플리카’ 중)

작가가 SF적 요소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편 ‘대니’에서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가진 보모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굿바이’에서는 육체적 고통을 겪는 임신부와 이상을 좇아 본래의 육신을 되찾지 않은 기계인간이 나온다. 현실 세계에선 보기 어려운 존재들이지만 이들이 겪는 문제는 지금 현대인들이 마주한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설을 쓴 양경언 문학평론가는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은 환상과 현실의 시공간을 진실과 허상, 존재와 부재가 접해 있는 이야기 층위로 벼려낸다”며 “세계의 구성원들이 ‘지금’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지에 관해 심문할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작가로서 과대평가받고, 엄마로서 힘겨워하며, 까마득한 낙차와 분열을 매일 느끼면서 썼다”면서도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이 기쁨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이 소설집을 기점으로 앞으로의 작품 활동이 더 기대되는 이유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