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 지음 / 돌베개 / 368쪽 / 2만원
대한제국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주택 모습은 크게 변했다. 도시에서 남성들이 새로운 직업에 종사하게 됐고, 직장은 대부분 주거공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낮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사랑채는 남성의 공간이 아니라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셋방으로 바뀌었다. 서구식 주택 양식 보급으로 외부인과의 교류 장소였던 사랑채의 역할은 응접실이 대신했다. 성별로 분리됐던 전통적 대가족 생활은 근대화 과정에서 부부끼리, 자녀끼리 결합한 구도로 변화했다. 따라서 집은 부부 침실과 자녀방 같은 세대별 공간으로 구성됐다.
주거공간은 이처럼 사회와 사회 구성원 간 관계의 변화를 반영한다. 근·현대 주거공간의 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전남일 가톨릭대 생활과학부 교수(소비자주거학)는 《집》에서 집이란 공간을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세심하게 들여다본다. “도시화 과정에서 아파트의 등장과 핵가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존의 관계를 갖고 있다”고 설명하고 “최근 1인 가구 확산은 도시 내 주거공간을 더 분열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집 내부 구조와 집의 외형, 집을 둘러싼 환경 등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해 집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는 부엌의 변화를 통해 가부장제에서 변화한 가족 구성원의 평등화 과정을 읽는다. 전통주택에서 부엌은 어둡고 연기가 가득한 고립된 장소였다. 부엌을 나와 마당을 지나 대청을 거쳐야 방에 이르렀다. 고된 노동의 장소였던 부엌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함께 점차 생활공간인 마루와 가까워지고 결국 연결됐다.
급격한 산업화는 도시로 유입된 노동자의 주거지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전통적 개념으로 집이란 당연히 한 주택에 한 가구가 사는 것이다. 하지만 주택은 셋집이 확충되면서 임대 위주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저자는 “다세대주택은 임대주택이 부족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민간 개발을 부추긴 정책 방향에 더해 ‘수익 추구’라는 단독주택 소유주의 욕망이 결합해 탄생한 주거 유형”이라고 정의한다. 층마다 모두 같은 면적의 독립된 세대가 모여 사는 다세대주택에서 비슷한 사정의 거주자들이 이웃을 형성했다. 주인집 눈치를 봤던 단독주택 세입자들과 달리 이들은 거주민 간 동질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국 도시 중산층은 새 아파트를 찾아 이사를 자주 하며 재산 증식을 도모하는 성향을 지닌다. 과거에 ‘내 집 마련’은 삶의 안정을 가져오는 중요한 수단이었으나 지금은 잦은 주거 이동이 경제적 안정을 얻는 수단이 되고 있다. 아파트는 이런 환금성과 이동 가능성을 충분히 담보하는 주거 양식이다. 저자는 “아파트는 자녀 교육을 위해, 또는 일자리를 찾아 ‘현대 유목민의 삶’을 사는 도시민에게 가장 적합한 형태로 진화한 주택”이라고 설명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