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에서 방자(정준태)와 향단(서정금)이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민은경)과 몽룡(김준수)을 보며 웃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에서 방자(정준태)와 향단(서정금)이 광한루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춘향(민은경)과 몽룡(김준수)을 보며 웃고 있다. 국립극장 제공
“네가 정녕 사나이 가슴에 불을 붙이는구나! 춘향아, 네가 계속 말 안 들으면, 나는 너를 쳐야 한단다. 가슴이 찢어져도 나는 너를 쳐야 하겠지!”

탐관오리의 전형인 ‘춘향전’의 변학도가 순애보적 인물로 다시 태어난다. 춘향은 당돌하고 톡톡 튀는 소녀로, 몽룡은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는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완벽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등장한다. 극작가 배삼식의 손을 거쳐 우리가 알던 춘향전 인물들이 새로 태어난다. 오는 16일부터 내년 2월10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에서다.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질펀한 유머를 겸비한 ‘마당놀이’의 색깔은 그대로 살렸다.

‘춘향이 온다’는 국립극장이 지난해 99%의 객석 점유율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심청이 온다’에 이어 두 번째로 선보이는 극장형 마당놀이다. 마당놀이 ‘원조 드림팀’이 다시 한 번 모였다. 1981년 ‘허생전’으로 시작해 30년간 마당놀이를 제작해 온 손진책 극단 미추 대표가 지휘봉을 잡았다. 배삼식 작가가 대본을 쓰고, 국수호 디딤무용단 예술감독이 안무, 김성녀 국립창극단 예술감독이 연희감독을 맡았다.

배 작가는 춘향전 인물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변학도는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라 몽룡 아버지의 부탁으로 춘향과 몽룡을 떼어놓기 위해 춘향을 고문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몽룡이가 왔겄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이 복잡다단헌 나의 심경을 니들이 짐작이나 허냐.”

배우들은 걸쭉한 입담과 애드리브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은 추임새를 넣으며 ‘제2의 주인공’이 된다. 손 대표가 “마당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출연자는 관객”이라며 “마당놀이는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닫힌 연극’이 아니라 ‘열린 연극’”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극장 안에서 선보이는 이색 마당놀이지만 무대에 3면의 가설 객석을 세워 관객과 배우의 간격을 좁혔다. 무대와 객석을 높이 11m의 대형 천으로 감싸 배우와 관객이 하나의 공간에 있는 느낌이 들도록 연출한다. 때로 대형 천은 영상이 뜨는 스크린이 되기도 한다.

국립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국악관현악단 소속의 배우 28명, 무용수 18명, 연주자 26명으로 구성된 출연진 72명의 화려한 춤사위와 구수한 소리, 신명 나는 음악으로 잔치판을 완성한다. 춘향 역은 연기파 소리꾼 민은경과 타고난 ‘춘향감’ 소리꾼 황애리, 몽룡 역은 ‘창극단 아이돌’로 꼽히는 이광복과 김준수가 맡았다. 국립창극단의 ‘숙영낭자전’ ‘변강쇠 점찍고 옹녀’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서정금이 향단, 손 대표가 마당놀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창극 배우로 꼽은 김학용이 변학도로 무대에 오른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