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부진으로 회사채 발행이 어려워진 기업들이 은행 대출 창구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기존에 발행한 회사채를 갚거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는 총 4조8625억원인 데 비해 상환한 회사채는 총 5조3181억원으로 상환액이 발행액보다 4556억원 많은 순상환 상태를 나타냈다. 지난 9월과 10월에 이어 3개월 연속 순상환이다.

반면 KEB하나은행 등 국내 5대 시중은행의 대기업 대출 잔액은 지난 10월 말 현재 85조8589억원으로 전달보다 2조2150억원 늘어났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회사채시장이 위축된 이후 대출을 문의하는 대기업이 많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 은행 대출은 회사채 발행보다 이자비용이 비싸다. 하지만 회사채 투자 수요가 부진할 때는 충분한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자사의 회사채 투자 수요가 부족했다는 결과(수요예측 결과)를 공시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 이미지도 나빠질 수 있다.

기업의 대출 수요 증가는 은행이 발행하는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금리의 두드러진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대출 실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시장성 수신’(채권 발행)을 늘린 결과다. 3개월 만기 CD 금리는 3일 현재 연 1.67%로 11월 초 이후 0.1%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은행채 금리는 연 1.95%로 0.18%포인트 올랐다.

김상만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 하반기 들어 회사채뿐 아니라 초우량 신용등급을 가진 은행채까지 신용 스프레드(국고채 금리와의 격차) 확대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예전과 비교해 과도하게 높아졌다고 보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김 연구원은 “현재 신용 스프레드 수준은 기업 실적 부진과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합리적인 가격 조정의 결과”라며 “초저금리 영향으로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호/하헌형/김은정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