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9500년께 만들어진 괴베클리 테페의 돌기둥. 김영사 제공
기원전 9500년께 만들어진 괴베클리 테페의 돌기둥. 김영사 제공
10만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에는 최소한 여섯 종(種)의 인간이 있었다. 동부 아프리카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유럽에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시아 동쪽에는 직립원인(호모 에렉투스)이 거주했다. 모두 호모 속(屬) 구성원이었다. 이 중 오직 한 종인 현생 인류 사피엔스만 살아남아 번성했다. 7만년 전부터 인지혁명으로 똑똑해진 사피엔스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1만2000년 전 농업혁명과 500년 전 시작된 과학혁명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를 완전 정복했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이웃 생명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2011년 히브리어로 발간된 이후 전 세계 30여개 언어로 번역, 출간돼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화제작 《사피엔스》에서 저자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가 파고드는 주제다.

하라리 교수는 멀고 먼 인류의 시원부터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쳐 끊임없이 진화해온 인간의 역사를 생물학과 인류학, 고고학, 종교학, 심리학, 철학 등 여러 학문을 넘나드는 큰 시각으로 조망한다. 인지혁명의 원인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다. 저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에 의해 뇌의 배선이 바뀌었다”고 모호하게 표현한다. 인지혁명의 시작으로 인간은 불을 지배함으로써 먹이사슬의 최정점에 올라섰고, 단순 정보 전달이 아니라 뒷담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통해 사회적인 공동체를 형성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다수가 유연하게 협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로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협동이 가능한 것은 오로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들을 믿을 수 있는 독특한 능력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은 농업혁명을 통해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를 경험한다. 늘어난 인구를 통제하는 수단은 종교, 계급, 권력 등 허구의 신화들이다. 농업 발달은 부의 증가와 정착 생활로 이어졌고, 사람들은 돈을 맹신하게 됐다.

과학혁명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와 팀을 이뤄 전 세계를 통합시켰다. 여전히 진행 중인 과학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수십만년간 ‘자연 선택’의 지배를 받아온 인류가 생명공학 사이보그 등의 ‘지적 설계’를 통해 불멸과 생명 창조란 신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저자는 흥미롭지만 논쟁적인 주장을 곳곳에서 펼친다. “인간은 생물학 연대기에서 가장 치명적인 종이자 생태학적 연쇄살인범”, “농업혁명은 역사상 가장 큰 사기” “자본주의는 경제체제가 아니라 종교의 일종” “현대인은 옛 시대의 사람들에 비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등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가 일방적이고 빈약하다고 반론을 제기할 독자도 있을 법하다. 하지만 인간이란 종에 대해 거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과학적 시각으로 답을 제시하는 과정 자체는 충분히 따라갈 만하다. 이 책의 큰 장점은 방대한 이야기를 포괄적인 시선과 재기 넘치는 문장력으로 정교하게 펼쳐낸다는 것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