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뉴 레전드
혼다 뉴 레전드
위로는 큰집 사촌형이 있고 아래로는 잘나가는 동생이 있다. 중간에 끼여 있는 나는 이 샌드위치 신세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먼저 존재감을 보여야 하는 게 지상과제다. 그래야 먹고살 수 있다.

똑같이 생존의 숙제를 안고 있는 차들이 있다. 하나는 혼다의 레전드(해외에선 아큐라 브랜드로 판매)이고 또 하나는 닛산의 맥시마다. 둘 다 자체 브랜드에선 플래그십(기함)으로 불리는 고급 중형 세단이지만 위아래로 베스트셀링카에 끼여 있어 그동안 주목을 덜 받았다.

레전드는 우선 혼다의 고급차 브랜드인 아큐라를 뛰어넘어야 한다. 아래로는 글로벌 베스트셀링카인 혼다 어코드에 뒤지면 안 된다. 맥시마도 같은 처지다. 닛산의 고급차 브랜드인 인피니티보다 나아야 하는 동시에 어코드의 경쟁 차종인 닛산 알티마를 극복해야 한다.

동병상련의 정을 나눌 법한 레전드와 맥시마가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다. 집 안에선 샌드위치 신세일지 모르지만 한국에선 잘 통할 수 있다. 프리미엄을 좋아하고 남과 다른 희소성 있는 차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많아서다. 게다가 두 차 모두 정숙한 가솔린 차량이라 디젤 피로감에 지친 소비자들을 잡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두 모델 모두 아시아 시장에서 1번으로 노린 국가가 한국이었다.

우선 지난 2월 국내에 나온 5세대 뉴 레전드를 시승했다. “운전은 쉽게 하는 거야”를 보여주는 혼다만의 편안함에 어코드에서 볼 수 없는 힘을 경험할 수 있다. 경사 30도가 넘는 오르막도 거뜬히 오른다. ‘어스 드림 테크놀로지’라는 혼다 특유의 다운사이징 기술 덕이다. 3.5L i-VTEC 6기통 직분사 엔진은 기존 4세대 모델보다 배기량을 200㏄가량 줄였다. 하지만 출력은 307마력에서 341마력으로 커졌다.
닛산 뉴 맥시마
닛산 뉴 맥시마
i-VTEC은 가변 밸브 제어 기술을 가리키는 단어다. 쉽게 말해 엔진이 흡입→압축→폭발→배기 4행정으로 움직이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연료와 공기가 오갈 수 있도록 밸브의 개폐 시기를 조절하는 것이다. 혼다는 이 기술을 가장 먼저 개발했고 완성도 역시 세계 자동차 브랜드 중 가장 높다. 기술의 혼다로 불리는 혼다만의 DNA를 레전드에서도 느낄 수 있는 셈이다.

또 운전대를 돌릴 때마다 안정감이 느껴진다. 핸들링에 따라 네 바퀴가 모두 움직이며 최적의 자세를 잡는 4륜 정밀 조향 기술(P-AWS) 때문이란 게 혼다코리아 측의 설명이었다. 이 기술도 세계 최초로 적용됐다.

지난 9월 출시된 8세대 뉴 맥시마는 날렵함을 주무기로 내세운다. 외모도 일본 차답지 않게 볼륨감 있게 생겼다. 전면부에 V자 형태의 그릴과 부메랑 타입의 LED 램프가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쿠페와 비슷하게 길게 늘여놔 스포츠 세단이라 불릴 만하다. 실내 공간은 제트기에서 영감을 받은 만큼 스포티한 느낌을 줬다.

닛산의 자존심과도 같은 VQ 3.5L 엔진을 달았다. VQ 엔진은 14년 연속 미국 워즈오토가 ‘세계 10대 엔진’으로 선정했다. 저속일 때엔 조용했고 고속일 때엔 터보엔진처럼 반응이 빨랐다. 차세대 엑스트로닉 CVT와 호흡을 맞춰 최고 303마력의 힘을 낸다. 4400rpm에서 36.1㎏·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맥시마를 스포츠 세단이라 선전하는 이유는 곡선 구간을 돌아보면 안다. 시속 100㎞ 이상에서 운전대를 돌려도 흔들림이 거의 없다.

레전드와 맥시마 모두 연비는 한 자리였다. 복합연비는 각각 L당 9.7㎞, 9.8㎞였지만 실연비는 8㎞ 이하였다. 가격은 맥시마가 4370만원으로 6480만원인 레전드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출력과 토크에선 레전드가 맥시마를 앞선다.

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