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봉사상 대통령상 박세업 씨 "불혹에 시작한 봉사, 나와 가족을 바꿨죠"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20~30년씩 타지에서 고생하시는 분이 훨씬 많아서요. 부끄럽고 부담되지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을 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25일 ‘개발원조의 날’을 맞아 경기 성남 한국국제협력단(KOICA) 본부에서 열린 ‘제10회 대한민국 해외봉사상’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박세업 씨(53·사진)는 행사 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국제 의료구호 비정부기구(NGO) 글로벌케어의 모로코 지부장으로 근무 중인 그는 북아프리카 지역 국가인 모로코에서 결핵 퇴치와 학교 건립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산의대를 졸업한 박씨는 2001년까지만 해도 마산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외과의사였다. 하루평균 환자 수가 250명 정도로 인근 지역에선 이른바 ‘잘나가고 돈 잘 버는 의사’로 통했다. 하지만 40대에 접어들면서 일상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이 마흔이 되고 보니 ‘과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싶었어요. 대학생 때 꿈이 해외 의료 선교사였거든요. 그런데 결혼해서 아들 둘 생기고, 외환위기 터지고 나서 가장으로 집안을 책임지느라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그런 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렸어요. 그 꿈이 되살아나면서 해외 봉사를 가게 됐습니다.”

처음엔 베트남과 몽골, 아제르바이잔 등에서 단기 체류하며 구순열(입술갈림증) 환자 수술을 비롯한 의료 봉사활동을 했다. 그리고 2005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 5년간 현지 병원에서 일했다. 그는 “당시 하루가 멀다 하고 폭탄 소리, 총 소리가 들릴 정도로 치안이 불안했지만 눈앞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을 두고볼 수 없었다”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참 많은 걸 얻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개업의사로 일했을 땐 퇴근하면 큰아들이 ‘아빠, 돈 얼마나 많이 벌어 왔어’라고 물었어요. 아프가니스탄에선 ‘아빠, 오늘은 어떤 환자를 만났어’라는 질문으로 바뀌더군요.”

박씨는 2011년부터 1년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보건학을 공부한 뒤 이듬해 모로코로 향했다.

“해외 봉사활동을 성공적으로 지속하려면 현지 문화와 종교 차이를 수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게 박씨의 지론이다. “전 독실한 크리스천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일하는 나라에선 이슬람교를 믿죠. 전 처음부터 제가 크리스천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야 종교 때문에 오해가 생기지 않아요. 라마단 기간엔 무슬림과 함께 단식합니다.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으면 진정한 봉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