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1월24일 오후 4시20분

[마켓인사이트] 초우량 회사채도 안 팔려…속타는 주관증권사
증권회사들이 기업의 회사채 발행을 주선했다가 투자자를 모으지 못해 발생한 잔여 물량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24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16~24일 SK텔레콤 아시아나항공 등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수요 예측을 진행한 14개 기업 중 절반이 넘는 8곳이 모집 금액을 채우는 데 실패했다. 금액으로 따지면 모집액 1조9600억원 중 24%인 4750억원어치가 팔리지 않았다.

최상위 신용등급인 ‘AAA’의 SK텔레콤은 2500억원어치의 회사채 발행 물량 중 2300억원어치만 팔렸고 연합자산관리(신용등급 AA0) GS EPS(AA0) 등 우량 기업의 회사채도 각각 500억원 및 800억원어치가 안 팔렸다. 신용등급이 투기 등급(BB+ 이하)보다 두 단계 높은 ‘BBB0’로 평가받은 아시아나항공은 1000억원어치 발행을 목표로 했지만 단 한 곳의 투자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같은 양상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에 이어 10월 삼성엔지니어링이 대규모 적자를 발표한 뒤 기업 신인도가 크게 손상됐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박진영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기관투자가들이 신용등급 고하를 막론하고 실적 하락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기업의 회사채엔 손을 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르면 다음달 이뤄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전에 싼 이자로 자금을 조달하려는 기업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발행 물량이 급증한 탓도 있다.

미매각 회사채가 속출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회사채 발행 업무를 대행한 증권사들이다. 발행 당일까지도 투자자를 찾지 못하면 발행 기업과 맺은 약정에 따라 미매각 물량을 전부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채권 발행 주선 부문 시장점유율 1위인 KB투자증권도 아시아나항공 등 발행을 대행한 다섯 개 기업 회사채 6500억원어치 가운데 2550억원어치밖에 못 팔았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이렇게 사들인 채권을 통상 3개월 이내 처분한다는 내규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가격을 내려서라도(금리를 높여서라도)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손실을 안 보려면 갖고 있어야 하지만 회사채 발행을 주선하는 팀에 채권 보유 한도가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채 대량 미매각 사태에 놀란 기업들은 줄줄이 회사채 발행을 포기하고 있다. 최근 GS칼텍스(AA+) 현대위아(AA-) 하이트진로(A0) 등이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를 차환하는 대신 상환하기로 했고 대림산업(A+)은 이달 말 10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