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연 8000조원 법인결제 시장 진출 '급물살'
새누리당 금융개혁추진위원회가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업무 허용’을 정식 의안으로 채택해 논의에 나섰다. 증권사의 법인결제 시장 진입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은행-증권사 간 10년 전쟁

새누리당 금융개혁위(위원장 김광림 의원)는 11일 3차회의를 열고 증권사에 법인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비공개로 진행한 이날 회의에는 금융위원회와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금융개혁위는 연말까지 수차례 회의를 더 열고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협의체 발족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개혁위 관계자는 “정부가 이미 빗장을 풀기로 한 사안”이라며 “이른 시일 내에 협의체가 구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인 지급결제는 급여 이체, 물품대금 결제 등 전산망을 통해 금전이 오가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공동망을 이용해 이뤄진 하루평균 결제금액은 43조3920억원이다. 이 중 법인 비중은 80% 안팎으로 추정된다. 법인들의 지급결제 시장만 하루 35조원, 1년에 8000조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은행의 고유영역인 지급결제 시장에 증권사가 참여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2006년에 시작됐다.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안(현 자본시장법)에 증권사의 지급결제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한국은행과 은행업계는 “결제시스템의 안전성을 훼손하고 은행과 증권업이 분리돼 있는 금융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2년여간의 논쟁 끝에 정부는 개인 종합자산관리(CMA) 계좌에 한해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는 것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법인 지급결제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 것은 올해 초다. 금융위원회가 경제정책 방향 주요 추진 세부과제로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를 전면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기업들의 자금이체 편의성을 높인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었다. 하지만 은행권의 반발로 연말이 될 때까지 규제 완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금융결제원 내부 규정에 ‘발목’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시장 진출 과정에 법적인 문제는 없다. 현행 자본시장법엔 증권사 등 금융투자업체들이 법인 지급결제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증권사들은 지급결제 업무를 위해 2009년 금융결제원에 특별참가금(3375억원) 납부도 완료했다.

증권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증권사 지급결제 범위를 개인으로 제한한 금융결제원의 내부 규정이다. 금융결제원은 법인 지급결제를 위한 소액결제시스템을 운영하는 기관으로 한국은행과 주요 시중은행이 이사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증권사의 지급결제 시장 진출을 마땅치 않게 여긴 시중 은행이 규정을 통해 진입 장벽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은행과 시중 은행들은 증권사의 ‘덩치’를 문제 삼고 있다. 신성환 한국은행 결제리스크팀 과장은 “증권사가 이미 개인결제를 하고 있긴 하지만 법인은 개인에 비해 결제 규모가 크기 때문에 금융위기 같은 충격이 오면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증권업계는 법인 예탁금은 한국증권금융에 별도로 의무 예치되기 때문에 유동성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박인천 미래에셋증권 자금팀장은 “한국은행이 실시간으로 순채무 한도를 감시하고 있고, 결제 규모가 증권사의 지급여력을 넘어서면 대행은행과 대출 계약을 맺어 결제 불이행을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논쟁을 업계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은행의 지급결제 업무에서 파생되는 각종 수수료 수입은 지난해 기준 6조6655억원에 달한다. 은행 입장에선 증권사가 경쟁자로 부상해 시장을 나눠 갖는 게 달가울 리 없다는 설명이다.

■ 소액결제시스템

금융결제원의 11개 시스템을 이용하는 개인이나 기업의 자금 거래.한국은행에 개설된 계좌를 이용하는 금융회사 간 자금 거래를 뜻하는 거액결제와 대비된다. 어음·수표 등의 교환결제, 지로를 통한 자금이체, 은행공동망을 통한 온라인 송금·입금·인출, 개인 또는 기업 간 인터넷 구매대금 결제 등이 포함된다.

허란/송형석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