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주현 MDM·한국자산신탁 회장 "집안·출신 탓 말고 오기로 인생을 개척하라"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문주현 MDM·한국자산신탁 회장, 관악구 '토크콘서트'
고교 진학도 못하고 직업훈련…절박함에 27세 늦깎이 대학생
장학금 받고 "나도 빚 갚겠다"…첫 10억원 이익 절반 재단 설립
고교 진학도 못하고 직업훈련…절박함에 27세 늦깎이 대학생
장학금 받고 "나도 빚 갚겠다"…첫 10억원 이익 절반 재단 설립
“성공에 대한 ‘간절함’과 스스로 뭐든지 다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겠다는 ‘오기’로 세상을 살아가세요.”
지난 10일 저녁 서울 관악구청 1층 ‘용꿈꾸는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문주현 MDM·한국자산신탁 회장(57)은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는 관악구 지역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 150여명이 참석했다.
과거 나산그룹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문 회장은 1998년 단돈 5000만원으로 MDM을 창업해 국내를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업체(디벨로퍼)’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2012년 관악구가 도서관을 개관할 때 건립비용의 절반인 1억원을 기부한 인연으로 이번 토크콘서트에 연사로 나섰다.
문 회장은 청소년에게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일궈낸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며 “어려운 집안형편, ‘빽’ 하나 찾아보기 힘든 주변환경을 탓하며 살기보다 반드시 오기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로 여기라”고 당부했다.
전남 장흥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문 회장은 “매일같이 바닷가에서 매생이를 캐고 양식한 김과 미역을 밤새 씻어 새벽시장에 짊어지고 나가 팔아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농부가 되기 싫어 찾아간 도시의 직업훈련원에선 하루 12시간씩 일하다 쇳물이 튀어 온몸에 쇳독이 올라 고생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30년 뒤에도 공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절박함에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문 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27세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들어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문 회장이 기부에 눈을 뜬 건 3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학비를 버느라 ‘주경야독’하며 어려움을 겪던 그는 우연히 한 독지가로부터 2년간 전액장학금을 받게 됐다. “그때 ‘당신처럼 꼭 성공해 후배들을 도우며 빚을 갚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문 회장은 술회했다.
회사를 나와 부동산 개발업계에 뛰어든 지 3년 만인 2001년 처음으로 10억원의 이익을 낸 문 회장은 그중 절반인 5억원을 떼서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직원들이 ‘우리 사장님이 회사를 키울 생각이 없나보다’고 수군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초 ‘환갑 전 100억원’을 목표로 한 문주장학재단의 자산은 현재 215억원까지 불어났다. 장학금 혜택을 입은 학생도 1600명을 넘어섰다.
문 회장은 “‘용꿈꾸는 도서관’이 개관 3년 만에 50만명이 찾은 명소가 돼 큰 보람을 느낀다”며 “내가 모은 재산이 모두 내 것이 아닌,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여기 모인 학생들이 ‘개천의 용’이 되기 위해선 ‘용꿈’부터 꿔야 한다”며 “오늘 문 회장을 만난 학생 모두가 용꿈을 꿨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지난 10일 저녁 서울 관악구청 1층 ‘용꿈꾸는 작은 도서관’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문주현 MDM·한국자산신탁 회장(57)은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했다. 이날 토크콘서트에는 관악구 지역 중·고등학생 등 청소년 150여명이 참석했다.
과거 나산그룹의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문 회장은 1998년 단돈 5000만원으로 MDM을 창업해 국내를 대표하는 ‘부동산 개발업체(디벨로퍼)’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2012년 관악구가 도서관을 개관할 때 건립비용의 절반인 1억원을 기부한 인연으로 이번 토크콘서트에 연사로 나섰다.
문 회장은 청소년에게 온갖 어려움 속에서 일궈낸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며 “어려운 집안형편, ‘빽’ 하나 찾아보기 힘든 주변환경을 탓하며 살기보다 반드시 오기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로 여기라”고 당부했다.
전남 장흥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문 회장은 “매일같이 바닷가에서 매생이를 캐고 양식한 김과 미역을 밤새 씻어 새벽시장에 짊어지고 나가 팔아야 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연히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농부가 되기 싫어 찾아간 도시의 직업훈련원에선 하루 12시간씩 일하다 쇳물이 튀어 온몸에 쇳독이 올라 고생하기도 했다. “이대로는 30년 뒤에도 공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절박함에 대학을 가기로 결심했다”고 문 회장은 당시를 회고했다.
27세에 경희대 회계학과에 들어가 ‘늦깎이 대학생’이 된 문 회장이 기부에 눈을 뜬 건 3학년 무렵이었다. 당시 학비를 버느라 ‘주경야독’하며 어려움을 겪던 그는 우연히 한 독지가로부터 2년간 전액장학금을 받게 됐다. “그때 ‘당신처럼 꼭 성공해 후배들을 도우며 빚을 갚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문 회장은 술회했다.
회사를 나와 부동산 개발업계에 뛰어든 지 3년 만인 2001년 처음으로 10억원의 이익을 낸 문 회장은 그중 절반인 5억원을 떼서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직원들이 ‘우리 사장님이 회사를 키울 생각이 없나보다’고 수군거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가 손대는 사업마다 큰 성공을 거두면서 당초 ‘환갑 전 100억원’을 목표로 한 문주장학재단의 자산은 현재 215억원까지 불어났다. 장학금 혜택을 입은 학생도 1600명을 넘어섰다.
문 회장은 “‘용꿈꾸는 도서관’이 개관 3년 만에 50만명이 찾은 명소가 돼 큰 보람을 느낀다”며 “내가 모은 재산이 모두 내 것이 아닌,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신념으로 앞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여기 모인 학생들이 ‘개천의 용’이 되기 위해선 ‘용꿈’부터 꿔야 한다”며 “오늘 문 회장을 만난 학생 모두가 용꿈을 꿨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