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영문이름이 한글 발음과 명백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영문 철자를 바꿀 수 없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호제훈)는 A씨가 “여권 영문명 변경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A씨는 2000년 자신의 이름에서 ‘정’을 영문 ‘JUNG’으로 표기해 여권을 발급받았다. 지난해 여권 재발급 신청을 하면서 이를 ‘JEONG’으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외교부와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소송을 내면서 “문화체육관광부 고시인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르면 ‘ㅓ’는 ‘eo’로 표기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어린 시절부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정’을 ‘JEONG’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바꾸지 않으면 해외에서 활동할 때마다 여권의 인물과 동일인임을 계속 입증해야 할 처지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권법 시행령의 영문성명 정정·변경 사유는 △여권의 영문성명이 한글성명의 발음과 명백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 △국외에서 여권의 영문성명과 다른 영문성명을 취업이나 유학 등 이유로 장기간 사용해 그 영문성명을 계속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 △여권의 영문 성에 배우자의 영문 성을 추가·변경 또는 삭제하려고 할 경우 등이다.
재판부는 “한국 여권에 수록된 한글 이름 ‘정’은 ‘JUNG’ ‘JEONG’ ‘JOUNG’ ‘CHUNG’ 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돼 있고, 특히 ‘JUNG’으로 표기된 비율이 62%에 이르는 반면 ‘JEONG’은 28%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을 ‘JUNG’으로 표기한다고 해서 한글성명의 발음과 명백하게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영문성명 변경을 폭넓게 허용하면 외국에서 출입국 심사 등에 어려움을 겪고 한국 여권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