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의 정신과 활동을 복지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작업은 조금은 생소하게 느낄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기업가와 경영인으로서 아산의 생각과 활동을 넘어, 아산이 궁극적으로 지향했던 사회상을 탐색해보면 ‘아산’과 ‘복지’의 조합이 전혀 낯설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아산은 기업을 넓은 의미에서 사회복지의 수단으로 인식했다. 기업은 개인의 부를 증식시키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늘려 나라 살림에 기여하고 풍요로운 국민생활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아산의 기업관은 확고했다.

사회복지, 의료, 사회공헌 그리고 교육의 영역에서 아산의 정신과 활동을 살펴보면 그 배경에는 확고한 인간존중 정신과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산이 가지고 있던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연민을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의 설립정신만큼 직접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은 없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설립된 지 38년이 지난 현재에도 재단이 가지는 위상은 확고하다. 연간 사업비와 총자산 규모에서 아산재단은 국내 기업재단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아산이 1989년 지역사회학교운동 20주년을 맞아 연설을 하고 있다. 한경DB
아산이 1989년 지역사회학교운동 20주년을 맞아 연설을 하고 있다. 한경DB
아산의 사회복지 철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자립 의지다. ‘빈곤과 질병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아산재단의 설립 취지는 수동적인 대상자로서의 복지수혜자가 아니라 도움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자발적인 주체로서의 사람을 강조하고 있다. 아산이 사회복지의 유형 중에서도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당시에는 용어조차 없었던 ‘교육복지’ 개념을 아산은 지역사회학교운동을 통해 실천해나간 것이다.

아산은 복지 영역에서도 기업가적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발휘했다. 아산재단이 당시 의료서비스의 사각지대였던 농촌지역에 종합병원을 짓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도 과감함을 넘어 무모한 사업이었는지도 모른다. 적자 운영이 불가피한 지방 아산병원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산이 제시한 답은 서울아산병원의 재정건전성을 높여 다른 지방 아산병원들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방식이었다. 단편적인 일회성 해결 방식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복지 영역에서도 제시한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복지다. 사회복지의 방향성을 놓고도 사회적 논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이제는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 우리에게 맞는 복지모형을 찾는 큰 그림을 그릴 때다.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자립 의지, 그리고 생산주의적 복지를 강조한 아산의 복지정신은 ‘한국형 복지’의 방향성을 가늠하는 데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큰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