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릭스 "원점 재검토"…현대증권 매각 무산 위기
일본 오릭스 본사가 현대증권 인수 계약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복잡한 인수 구조로 금융당국의 승인이 지연되는 가운데 정치권을 중심으로 ‘파킹 거래’(주식을 일정 기간 맡겨 두는 거래) 의혹이 확산된 데 따른 ‘후폭풍’이다. 현대그룹과 주채권은행(산업은행)은 매각 무산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고 ‘플랜 B’(비상대응책)를 강구하고 있다. ▶본지 4월2일자 A21면 참조

◆투자 시한은 지났는데…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오릭스는 19일부터 일본 본사에서 현대증권에 대한 투자 기한 연장 여부를 논의한다. 오릭스 본사는 지난 6월 한국법인인 오릭스PE코리아의 현대증권 인수 본계약(SPA)을 승인하면서 향후 4개월간 인수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투자를 중단할 권리(long stop)’를 조건으로 달았다. 당초 오릭스 본사는 현대증권 전체 인수자금(6500억원)의 20%인 13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지만 이제 ‘4개월 시한’이 지난 만큼 투자 여부를 백지상태에서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오릭스PE코리아 측은 본사가 투자계획을 철회할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일본 본사가 최근 현대증권 투자 기한 연장에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선 것 같다”며 “이번주에 본사 입장이 결정되면 (매도자인) 현대그룹과 협의를 거쳐 향후 대책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매각은 복잡하게 꼬이고…

이런 상황은 금융당국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곧 마무리되고 현대증권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는 기존 관측을 뒤집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현대증권 인수구조에 문제가 없으며 2대 주주인 자베즈파트너스가 300억원 규모 투자확약서(LOC)만 제출하면 대주주 승인을 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자베즈는 지난주 관련 문서를 전달했다.

오릭스 본사가 입장을 선회한 것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국정감사에서 ‘파킹 거래’ 논란 등이 거론되는 상황을 크게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킹 거래는 경영권을 ‘진성 매각(true sale)’하지 않고 사모펀드(PEF) 등에 잠시 맡겨두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그룹 재투자(2000억원) 비중이 높고 현대 측이 3~5년 후 지분을 되살 수 있는 콜옵션을 가진다는 조건 등이 근거로 제시됐다. 주주 간 계약을 체결해야 할 자베즈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를 받은 상황과 금융당국 승인이 지연된 것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대그룹 후폭풍 맞나

산업은행 실무진도 “현 상황에서 오릭스에 추가 검토시간을 주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오릭스는 지난 1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9개월이 넘도록 매각을 종료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매각 대금 4500억원(재투자금 제외)의 연내 유입이 불투명해진 것은 산업은행과 현대그룹 모두에 부담이다. 현대 측은 자산 담보 대출 등을 통해 올 연말까지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플랜 B’를 산업은행과 협의하고 있다.

당장 산업은행은 오는 24일 만기 도래하는 현대상선 대출금 2000억원의 연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대증권 매각 대금을 담보로 지난해 4월 빌려준 돈인데, 당초 예상보다 6개월 이상 회수가 지연되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매각 중단 귀책 사유가 현대그룹에 없다면 자금을 곧바로 회수하기가 어렵다”며 “산업은행 주도로 매각이 재추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릭스, 자베즈, 현대그룹, 산업은행 등 이해관계자들이 매각 실패에 따른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위원회는 KDB대우증권 매각에 미칠 부작용을 걱정하고 있다. 매각 측의 한 관계자는 “현대증권과 대우증권이 동시에 매물로 나오면 개별 인수합병(M&A)의 열기가 식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좌동욱/하수정/안상미 기자 leftk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