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를 두 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미국 재계와 정치안보 분야 오피니언 리더들 앞에서다. 박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한미재계회의에서 “한국이 TPP에 가입하면 양국 기업에 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데 이어 정치안보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연설에서 “한국은 TPP에서도 미국의 자연스러운 파트너”라고 말했다.

지난 5일 TPP 참여 12개국의 협상 타결 선언 이후 박 대통령이 TPP 가입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이어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TPP가 공식 의제에서 빠져 TPP 참여를 실기(失機)해 놓고 뒤늦게 조급함만 드러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TPP 가입 의지 처음 밝힌 朴

박 대통령은 그동안 TPP 가입과 관련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중국 방문 때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 중심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동시에 언급하며 “글로벌 무역체제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발언을 했다. 이달 초 TPP 참여국 간 협상이 타결된 이후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TPP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정부 입장을 밝혔지만, 박 대통령은 이후 공식·비공식 회의에서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정상회담] 박 대통령, 혈맹 강조하며 'TPP 구애'…정상회담 의제선 빠져
TPP에 대해 말을 아끼던 박 대통령이 가입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과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세계 최대 메가 무역협정의 출범이 현실로 다가왔고 이를 피할 상황이 아닌 만큼 원론적인 차원에서 가입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TPP 불참이 박근혜 정부의 중국에 경도(傾倒)된 외교와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강했던 만큼 이를 불식시키기 위한 차원이란 분석도 나온다.

정상회담 의제에서는 빠져

하지만 16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정작 TPP가 의제에 없었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회담 전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공식 의제에 TPP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회담의 최우선 의제는 북핵·북한문제였고, 통상에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내실화하는 방안 정도가 포함됐다. 외교당국 관계자는 “참여국 간 협정 타결 선언이 열흘 정도밖에 안 된 시점에서 비(非)참여국인 한국의 가입 여부를 한·미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로 넣는 것에 미국이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회담 의제에서 빠진 것은 그동안 TPP 출범 이전 한국의 TPP 가입에 대해 미국이 부정적 입장을 취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한국의 TPP 가입을 원칙적으로 환영하나, 가입 시기는 TPP 타결 후 12개국과 논의해야 할 문제’라는 원칙을 견지해왔다.

“TPP 지각 수업료 비쌀 것”

박 대통령의 방미 중 TPP 발언은 TPP 논의 초기 참여기회를 놓친 뒤 뒤늦게 다급해진 한국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TPP 참여국 간 협정문이 공개되면 통상절차법에 따라 경제영향 분석→가입 여부 결정→국회 보고→공청회 개최 등을 거쳐 가입을 선언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12개 참여국과 개별 협상을 거쳐야 하는 만큼 실제 가입 시점은 내년 말까지도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뒤늦게 가입하더라도 ‘TPP 지각생’인 한국의 수업료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쌀시장 추가 개방이다. 정치적 이유로 쌀시장 개방을 끝까지 막고 싶어했던 일본은 결국 TPP 발효 첫해 미국과 호주로부터 각각 쌀 5만t과 6000t을 추가 수입하기로 했다. 미국은 한국이 TPP에 뒤늦게 가입하려면 최소한 일본 수준의 쌀시장 개방은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성미/정종태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