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영어 랩 배틀…스님들 불교 세계화 '열공'
“Show me the Buddha!(부처를 보여줘) Whoever follows the Buddhism, they can proceed to be awaken cause they know everything is empty.”(불법을 따르는 자들, 그들은 모두 깨달음으로 갈 수 있어, 모든 것이 ‘공(空)’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14일 서울 견지동 조계사 옆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 전통문화예술공연장. 제1회 조계종 학인 외국어 스피치 대회(사진)에 참가한 동국대 학인 승려들이 영어 ‘랩’을 선보이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부처와 달마의 영어 랩 배틀을 통해 부처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내용이었다. 승려들의 비트박스도 수준급이었다.

부처 역을 맡은 지수 스님은 “불교라고 하면 산속 깊숙이 있고 폐쇄적이라고 생각하며 노(老)스님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불교의 이미지를 밝고 경쾌하게 바꿔보고 싶어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며 “불교가 젊고 미래지향적인 종교로 거듭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계종 교육원이 주최한 이날 행사는 승가대와 동국대에 재학 중인 학인 승려를 대상으로 열렸다. 세계화 시대에 맞춰 승려의 자질을 향상하고 불교의 교리와 사상을 해외에 널리 알리자는 취지에서다. 지난달 15일 열린 예선에 참가한 161명 중 뽑힌 개인부 13명, 단체부 6팀 등 64명이 이날 본선에서 기량을 겨뤘다. 교리와 사상, 승가대 생활, 사찰문화 등 주제는 다양했다.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게 하는 영어 프레젠테이션부터 랩 배틀까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넘쳤다. 특히 단체팀은 춤과 노래, 연극 요소까지 곁들인 음악극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동학사 승가대 학인 15명은 ‘the three poisons(탐욕, 화,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을 주제로 음악극을 무대에 올렸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도현 스님은 ‘Magic for mind transformation(마음 바꾸기 마술)’이라는 발표를 통해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꽃이 되고, 늪이 되고, 천둥과 벼락이 되기도 한다”며 ‘마음의 주인공이 되자’는 이야기를 수준급 영어로 전달했다.

동학사 승가대 진홍 스님은 영어 공부를 하게 된 경험을 소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2년 전 큰 쓰레기 더미를 나르고 있던 그를 본 한 여성이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If you don’t study hard, you will become garbage and be thrown out just like her.”(너 공부 열심히 안 하면 저 사람처럼 쓰레기가 돼서 버려질 거야) 이날 세계화 시대에 맞는 현대적 승가 교육의 중요성을 발표해 개인부문 대상을 받은 진홍 스님은 “마흔이 넘어 출가해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줄은 몰랐다”며 “승가는 공부를 못 하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하는 멋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