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구 기자 ] 고려대가 성적우수 장학금을 없애는 ‘장학 실험’에 나선다. 대신 저소득층 학생들에겐 장학금에 특별 생활비까지 지급한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이 없도록 한다는 취지다. 장학금의 학업 보조금 기능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고려대는 이같은 내용의 장학제도 개편안을 14일 발표했다. 새 장학제도는 내년부터 적용된다. 학교 측은 이를 위해 ‘미래인재 육성기금’이란 이름의 별도 장학기금 100억원을 마련키로 했다.

이번 결정은 ‘개척하는 지성’을 강조해온 염재호 총장의 지론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학교 측은 “대학이 미래세대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아야 한다. 새 장학제도는 미래세대 비전 만들기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귀띔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필요 기반(Need-Based) 장학금’의 확대다. 소득 0~2분위 학생들은 국가장학금 I유형과 교내 장학금으로 등록금을 100% 감면받아 왔다. 앞으로는 여기에 더해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교내 근로 연계) 학생들에게 특별 지원금 명목의 생활비가 매월 추가 지급된다.

고려대는 “등록금·생활비를 마련하려고 학업을 중단하거나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며 “장학금이 결과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를 확대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쓰여야 한다는 고민의 결과물”이라고 했다.

‘프로그램 기반(Program-Based) 장학금’의 비중도 높인다. 자기계발을 위해 스스로 설계한 프로그램에 대해 지원하는 점이 특징. 학생들이 도전·체험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기획해 제안하면 장학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장학금을 지원한다.

대표적 사례가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차이나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이라고 학교 측은 설명했다. 국내에서 중국어를 배운 뒤 현지에서 심화 과정을 수료하는 프로젝트로 참가 학생 전원이 등록비와 수업료, 항공료, 기숙사비까지 전액 장학금 지원을 받고 있다.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는 장학금 대신 일종의 명예를 선사하고 격려하는 방식으로 바꾼다. 부모를 동반한 초청오찬 등도 계획하고 있다.

신지영 고려대 학생처장은 “고려대의 교육이념과 철학을 새 장학제도에 담았다. 학생들 학업에 경제적 장애가 걸림돌이 돼선 안 된다는 것이 이번 개편의 핵심 의도”라며 “기계적 배분이 아닌 맞춤형 장학 혜택을 통해 학생들이 미래인재로 커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측은 새 장학제도의 이름을 교훈인 ‘자유·정의·진리장학금’으로 각각 명명했다. 자유장학금은 학생자치활동·근로장학금이다. 정의장학금은 필요 기반(NB), 진리장학금은 프로그램 기반(PB) 장학금으로 운영한다.

고려대는 내년 장학 예산을 총 359억원으로 늘려 자유장학금 35억원, 정의장학금 200억원, 진리장학금 100억원으로 배분한다. 이미 예산에 반영돼 있는 성적우수 장학금 24억원은 제도 시행 첫해인 내년에 한해 지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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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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