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출간된 제3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 ‘열등의 계보’를 쓴 홍준성 씨.
최근 출간된 제3회 한경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당선작 ‘열등의 계보’를 쓴 홍준성 씨.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몸부림친 3대의 이야기를 그린 홍준성 씨(24)의 장편소설 《열등의 계보》(은행나무)가 출간됐다. 제3회 한국경제신문 청년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이다. 부산대 철학과를 휴학 중인 홍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처음 쓴 장편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그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전후 한국과 1980~1990년대를 지나 현재까지 망라하는 이야기의 힘이 가장 센 작품”이라며 “독자를 끌고 가서 기어코 끝을 보게 하는 완력, 사건과 인물을 제어하는 통제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몰락한 3대의 몸부림…"묵직한 역사에 위트 덧칠"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초반부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사는가”란 질문을 던진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살아지지 않는 게 인생이다.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어진 운명을 바꾸려는 3대의 몸부림이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경남 김해에 살던 소작농 김무(金無)로부터 시작한다. 양반의 후손이라는 사실 하나만을 자부심으로 삼는 그는 장가나 잘 가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하지만 몰락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형의 학비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그는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밭 노동자의 길을 택한다. 김무는 열심히 일해서 멋지게 살아보고 싶었지만 허무하게도 실종으로 생을 마감한다.

김무의 아들 성진은 하와이에서 ‘김 반장’으로 불리던 아버지가 사라지자 아버지 친구 염씨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국에서 챙긴 담배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부산을 주름잡던 정치깡패 유 계장의 훼방으로 살길이 막막해진다. 갑자기 6·25전쟁까지 터지자 그는 전선에 뛰어든다.

시간은 흘러 김무의 손자이자 성진의 아들인 철호가 태어난다. 전쟁에서 다리를 다친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어머니는 가난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몰린 철호는 용역깡패가 돼 쇠망치를 들고 철거촌을 누빈다. 3대에서 기막힌 인생 역전을 노렸지만 그의 인생도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비명횡사한 아버지의 유골함 앞에서 시간을 보내던 철호의 딸 유진은 가출했던 할아버지 성진을 우연히 만난다. 할아버지로부터 그간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유진은 어느 날 꿈에서 깨어나 이 부초처럼 유전했던 ‘수난 3대’에 대한 글을 쓴다.

제 땅마지기 하나 없는 가난으로 인한 하와이 이주의 삶, 어지럽기만 했던 부산, 포화 속의 이념 대립,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가 근 100년의 역사에 얽혀 복잡하게 돌아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가족사가 있었나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순간순간 터져 나오는 위트와 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따르다 보면 작품에서 손을 떼기 어렵다. “기어이 끝을 보게 하는 완력”이란 심사평이 바로 떠오른다.

20대 초반에 소설가가 됐다는 것은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그는 올해 문학동네 작가상 본심 8인에 이름을 올렸고 지금도 작품을 쓰고 있다. 홍씨는 “이전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는 데 열중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세상에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그러모아 재밌는 소설로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