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한국 수출의 ‘허리’ 같은 품목이다. 수출 금액 기준 반도체가 1위, 디스플레이가 7위다. 그동안에는 마땅한 경쟁자도 없어 세계 시장을 한국이 독점하다시피 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중국 BOE는 최근 세계 최초로 10.5세대 투자를 선언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아직 8세대에 머물러 있다. 이에 한국 업체들은 한 차원 앞선 신제품으로 추격을 따돌리려 하고 있다. 메모리반도체에서는 PC쪽 제품 비중을 줄이고, 모바일이나 서버에 공급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디스플레이에서는 기존 액정표시장치(LCD)를 뛰어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앞세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중국의 무서운 추격

반도체산업 육성에 대한 중국 정부의 의지는 무서울 정도다. 인수합병(M&A) 시장을 보면 잘 나타난다. 중국은 올 들어 세계 2위 CMOS 이미지센서(CIS) 업체 옴니비전을 인수했다. 메모리반도체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 세계 2위인 마이크론과 글로벌파운드리에도 인수 제안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년 2000억달러(약 234조원)가 넘는 반도체 수입을 줄이기 위해 천문학적 돈을 투자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도 BOE, XMC 등이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세계 1, 2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발 위기론은 시기상조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황철성 서울대 반도체연구소장은 “메모리반도체의 핵심 기술을 지닌 일본 엔지니어들이 상당수 중국으로 넘어갔다”며 “설계가 크게 어렵지 않기 때문에 단기간 대규모 투자를 하면 10년 이내에도 추격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2005년 처음 LCD 사업에 뛰어든 BOE는 막대한 정부 지원과 탄탄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10년 만에 세계 5위 업체로 성장했다. 최근 투자를 결정한 10.5세대 공장이 완성되면 출하량 기준으로 세계 선두에 올라설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한 세대 앞선 기술로 세계 시장 선점

한국 전자부품업계는 이 같은 시장 상황을 인식하고 차세대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반도체는 모바일, 서버에 공급하는 비중을 늘리고 있다. 모바일, 서버용 메모리 반도체는 PC용에 비해 고급 기술이 쓰인다.

모바일은 가볍고 작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버는 데이터를 수없이 저장하고 꺼내 써도 사라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중요하다. 중국 업체들이 쉽게 따라하기 힘든 부분이다.

PC시장은 줄어들고 있는 반면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열리면서 모바일, 서버 시장은 커지고 있다. 모바일, 서버 메모리 시장은 한국 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다. 디스플레이에서는 ‘궁극의 디스플레이’로 불리는 OLED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아직 중국 업체 중에선 제대로 OLED 제조를 하는 곳이 없다. 현재 휴대폰에 쓰이는 중소형 분야에선 삼성디스플레이가 95%의 점유율로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TV에 쓰이는 대형 OLED는 LG디스플레이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양산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OLED는 소재 등에서 원천기술이 필요해 중국이 자금력만으로 따라잡기 쉽지 않다”며 “미리 시장을 선점하면 중국을 확실히 따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