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을 지낸 김모(65) 씨는 최근 강원도를 떠났다. 퇴직 후 아내와 함께 “공기 좋고 물 좋은 데서 농사나 짓자”며 강원도 산골로 들어왔지만 생각만큼 시골살이가 편하지 않았다. 시골살이를 답답해 하는 부인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급기야 우울증이 찾아왔다. 부부간에 대화도 사라졌다. 농사일도 쉽지 않았다. 고구마 등 간단한 농사를 지었지만 연거푸 실패했다. 경험도, 지식도 없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김 씨는 귀농을 포기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귀농하면서 빌린 영농자금은 지금도 고스란히 빚으로 남아 있다.

지난해 귀농·귀촌 가구 수는 4만5000호. 전년 대비 40%나 늘었다. 하지만 귀농·귀촌이 느는 것 못지않게 실패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장밋빛 꿈을 안고 도시 생활을 청산한 뒤 내려왔다가 결국 김 씨처럼 영농 기술 미숙, 가정 또는 주민과의 마찰 등으로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익숙한 도시 생활을 떠나 농촌 생활을 하는 것은 적응도 힘들 뿐만 아니라 경제적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농촌 이주 순간부터 마당 청소, 집 보수, 농기구 관리 등을 직접 해야 하며 고정 수입도 일정하지 않다. 지금까지의 편안한 삶보다 열악한 환경에 접어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공적으로 농촌에 정착하기 위해 꼭 알아두고 실천해야 할 귀농·귀촌 십계명을 알아본다.

1 가족 동의를 얻어라.
귀농·귀촌인의 사례를 보면 부인을 설득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한다. 남편은 나이가 들수록 귀농·귀촌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반면 부인은 도시 생활을 원하기 때문이다. 부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농·귀촌을 강행한 부부는 별거하듯 따로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가족과의 충분한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차근차근 준비하라.
시골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탐색하고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적어도 귀농은 4~5년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나하나 체크해 보자. 필요하면 가려는 농촌 지역에서 사계절을 경험해 보는 것도 좋다. 직접 체험을 통해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면 실패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처음 몇 년간은 배우고 기반을 닦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3 발품을 많이 팔아라.
은퇴 전후 50~60세에 이주해 정착하면 적어도 30년 이상 살아야 한다. 그러니 많이 보고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다. 귀농귀촌종합센터·귀농귀촌창업박람회·지방자치단체 귀농 협의회 및 농업 관련 기관을 방문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정부 또는 지자체, 공공 기관, 대학교 등에서 여는 귀농·귀촌 교육을 이수하는 것도 좋다.

4 귀농 멘토(선배)를 찾아라.
먼저 귀농한 선배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다. 자기보다 먼저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득한 살아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든든한 인적 네트워크를 마련해 둔다면 귀농·귀촌 과정이나 정착 후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훨씬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다.

5 지목(地目)·지형을 꼼꼼히 따져보라.
주택의 규모와 형태, 농지의 매입 여부를 결정한 뒤 최소 3~4군데를 골라 비교해 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농지 매입 시에는 주변 시가를 파악해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구입하려는 농지가 농지원부 발급 대상 농지인지 시청이나 군청에 필히 확인한다. 매입할 부지의 도로와 교통 사정, 학교, 병원, 공공 시설로의 접근성도 검토한다.

6 작게 시작하라.
초기 농사 기술이나 농사 환경이 다듬어지지 않는 상태에서 과잉투자해 낭패 보는 경우가 있다. 여윳돈이 있다면 가진 자금 중 일부는 보존하고 도시의 주택도 남겨둘 수 있다면 남겨두는 것이 좋다. 주택이나 농지 규모를 축소해 자산을 분리하는 방법도 있다. 최소 2년 정도의 생활비는 손에 들고 있기를 권한다. 그래야 적응기에 닥칠 수 있는 어려움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지자체마다 마련한 ‘귀농인의 집’을 활용해도 좋다. 지난해 정부는 빈 집 개조를 통해 귀농인의 집 300곳을 건립하고 희망자를 찾고 있다.

7 재능 기부를 하라.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과 우수한 재능, 식견,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이것을 지역 환경에 맞게 지역사회에 봉사하라. 이것이 지역민과의 화합에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법률, 홍보 전문가, 산업 디자이너 등 다양한 경험이 농업에도 도움이 된다. 마을회관 방과 후 학교, 야간 취미 교실에서 예체능 등의 재능을 기부하는 경우도 있다.

8 판로를 확보하라.
농사는 결국 파는 것이 힘이다. 농산물에 대한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판로를 확보해야 한다. 온·오프라인을 동시에 마케팅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이 좋다. 귀농·귀촌 지역의 특산물을 재배하면 판로 확보가 보다 수월하다.

9 부가가치를 올리는 창업을 하라.
같은 농사를 짓더라도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는 창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배추를 그냥 파는 것보다 절인 배추를 팔면 더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 고추나 무를 김장 패키지로 묶어 파는 것도 부가가치를 더욱 높이는 방법이다. 빠르게 변하는 웰빙 트렌드에 맞는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비즈니스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10 귀농·귀촌 정책 흐름을 살펴라.
귀농·귀촌에 성공하려면 정책의 흐름을 빠르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책 지원을 받으면 아무래도 힘이 덜 들고 비용 부담도 낮출 수 있다. 교육부터 창업까지 국비 지원 혜택이 다양하다. 지자체별 지원 정책이 상이하므로 반드시 현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
도움말 김덕만 귀농귀촌종합센터장

<본 기사는 한국경제매거진 한경 BUSINESS 1034호 제공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