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1인 GDP 3배 증가…실업률 10% 초반으로 줄어
삶의 만족도, 서독에 근접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 붕괴로 급진전한 동서독의 통일은 독일 국민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갑작스럽게 진행됐다. 당시 동독의 한 관료가 여행법 개정안 내용을 설명하다 “지금부터 동독과 서독을 넘어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고 말실수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동독은 사태를 수습할 수 없었고 그로부터 11개월 뒤인 1990년 10월3일 독일은 통일됐다.
그만큼 서독과 동독 모두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1989년과 1990년 각각 30만명이 넘는 동독인이 서독으로 넘어갔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1989~2013년 서독 인구는 약 4% 늘어난 반면 동독 인구는 14%가량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오랜 분단으로 둘 사이의 심리적 장벽도 높았다. 동독 출신을 ‘오시(동독놈)’, 서독 출신을 ‘웨시(서독놈)’로 서로를 비하했다. 동독 경제는 곧 붕괴했고 동독인은 높은 실업률에, 서독인은 1조유로(약 1318조원)가 넘는 통일 비용에 불만을 터뜨렸다.
동독 출신으로 코메르츠뱅크 이코노미스트로 일하는 요르크 크래머는 “동서독의 마르크화를 1 대 1로 교환하면서 경쟁력 없는 동독 기업이 망하자 동독인의 기대는 좌절로 바뀌었다”고 NYT에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25년이 흐르면서 상처는 아물고 있다. 젊은 세대는 더 이상 서로를 구별하지 않는다. 동독지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 사이 세 배 가까이 올라 서독지역의 3분의 2 수준으로 따라붙었다. 동독지역 실업률은 20%대에서 10% 초반으로 떨어졌다. 삶의 만족도와 중앙난방주택 거주 비율 등은 서독에 근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제 동·서독의 격차는 이탈리아 스페인 벨기에 내의 지역 격차보다 작아졌다”며 “성공적인 통일로 부를 만하다”고 평가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