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토론]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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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7일 열린 한은 국정감사에서 “(화폐단위를 낮추는) 화폐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밝힌 이후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예컨대 1000원을 1원으로 바꿔 쓰자는 것이다. 국내 화폐단위는 1962년 10환이 1원으로 바뀐 이후 53년째 그대로다. 한은이 같은 날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것”이라고 해명했고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달 18일 “정부 내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찬반 논의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거래의 편의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1962년 이후 우리 경제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화폐단위는 변하지 않아 ‘화폐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돈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지하에 숨은 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반대론자들은 본질적인 가치 변동 없이 신권 교환, 시스템 개선 등의 비용만 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들의 혼란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상품을 생산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반대론자들은 강조한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 필요한가’를 주제로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와 이창양 KAIST 경영대학 교수가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경제발전 불구 53년前 단위 사용…거래 편리·지하경제 양성화에 도움
디플레이션 우려되는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
현재 한국에서는 화폐단위 축소가 여러 측면에서 필요하다. 우선 1962년 화폐단위 변경 이후 국민총소득은 4045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2120배 증가했다. 소득은 이처럼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 됐는데 화폐단위는 53년 전 것을 사용하고 있다. 몸은 어른이 됐는데 어린 시절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중 달러당 1000원처럼 높은 화폐단위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외국에서 한국의 화폐단위를 보고는 후진국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라서 국격에도 맞지 않다. 경제 발전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다.
둘째, 거래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도 올랐는데 53년 전 단위를 사용하다 보니 거래단위가 너무 크다. 불편이 적지 않다. 금융시장에서는 경(京)이라는 생소한 단위가 등장했다. 국민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에서도 ‘0’을 세 개 떼고 사용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불편해 원화의 국제화에 걸림돌이 된다.
셋째, 세원(稅源) 발굴 등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화폐 회수율이 떨어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7~2008년 평균 95.5%였던 화폐 회수율이 금융소득 과세가 강화되고 금리가 낮아진 2013년에는 72.8%로 급락했다. 2014년엔 64.5%를 기록했다. 그만큼 화폐 발행액 가운데 지하경제로 숨는 돈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5만원권 회수율 하락의 영향이 크다. 5만원권 회수율은 2012년 61.7%에서 2013년 48.6%, 2014년 27.7%로 낮아졌다. 2015년 7월 말 5만원권 발행 잔액은 약 58조6000억원이다.
회수율을 고려할 때 17조원 정도만 회수되고 약 42조원은 회수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회수되지 않은 돈의 상당 부분은 검은돈이거나 과세 대상에서 탈루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110억원이 발견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전체 화폐 발행 잔액의 72.8% 수준인 5만원권이 유통되지 않으면서 화폐를 발행해도 화폐 유통속도가 낮아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다.
화폐단위 축소에 따르는 부작용으로는 수요가 늘어 물가가 상승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교체 등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이 높을 때는 화폐단위 축소나 변경은 부적절하다. 지금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소비 및 생산활동의 부진이 우려되는 실정이어서 화폐단위를 축소할 적당한 시기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이다. 화폐단위를 축소하면 지하자금이 양지로 나오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화폐를 유로화로 통일한 유로존의 경험을 토대로 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화폐단위 축소 시 현재의 1000원·5000원·1만원·5만원권 외에 거래에 많이 쓰이는 2만원권을 추가해 거래 편의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화폐단위 축소와 더불어 새로운 권종을 추가하기 때문에 화폐단위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반대 / 신권 발행 등 교체비용 너무 커…새 단위 적응까지 혼란·불편 가중
카드 확산으로 화폐단위 불편 줄어 신중한 접근을
원화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는 그동안 수차례 있었다. 이는 1962년 단행된 화폐 개혁 이후 우리 경제 규모의 확대로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짐바브웨, 모잠비크, 루마니아, 유로존 등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있었지만 유로존을 제외하면 주요 경제국의 예는 찾기 어렵다. 이들 나라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 가치의 하락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정치·경제적 요인 중에서 인플레이션이 리디노미네이션의 가장 유력한 설명변수로 제시되고 있다.
원화의 리디노미네이션으로 기대되는 일반적인 효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현재의 1000원을 새로운 1원으로 변경한다고 가정하자. 우선 그동안 크게 커진 우리 경제 규모에 맞게 화폐단위를 조정함으로써 숫자의 표기와 거래가 간편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1억원은 10만원으로 줄어든다. 둘째, 달러당 네 자리로 표시되는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원 단위로 대등하게(?) 표시돼 거래의 편의와 원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신권 교환 과정에서 지하자금의 양성화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들 기대 효과를 따져 보면 추상적이거나 외형적인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1234원으로 표기한 수치는 새롭게 1.234원으로 바뀌어 기장(記帳)의 간편함이 미약해진다. 미국의 달러-센트 체계처럼 소수점 하위 숫자들을 나타내는 화폐단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거래에서도 신용카드와 각종 전자화폐의 확산으로 화폐단위로 인한 불편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달러당 원화가 1원 단위로 표시된다고 해서 원화의 실질적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원화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셋째, 지금까지의 화폐 개혁 사례와 오늘날의 금융 국제화를 고려할 때 지하자금 양성화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은 그 기대 효과에 비해 실질적이고 직접적이다. 우선 그 비용이 매우 크다. 직접적으로는 신권 발행 비용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인프라 교체 비용이 만만찮다. 이런 비용이 내수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지나친 논리다. 그 효과도 일시적일 뿐 아니라 금융회사의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둘째, 새로운 화폐단위가 경제활동에서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 기간 혼란과 불편이 불가피하다. 아직도 평(坪)보다는 제곱미터(㎡)가 생소하고 도로명 주소 체계가 생활화되지 못한 것과는 견줄 수 없는 혼란일 것이다. 또한 실물에 비해 화폐 가치가 낮게 인식돼 부동산 등 실물 수요가 늘어나기도 하고, 가계가 빚을 과소하게 인식하는 착시현상도 있을 수 있다. 셋째, 100원 이하 단위가 절상돼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혹자는 현재의 저물가 상황에서 이는 감내할 만하다거나 디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지만 개별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실질 구매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한 때는 대체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크게 낮아지거나 지하경제가 지나치게 비대한 경우와 유로존처럼 화폐 통합이 이뤄지는 경우다. 무엇보다 화폐단위는 경제제도의 근간이므로 리디노미네이션의 득실과 경제 상황을 꼼꼼히 따져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설득력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찬성론자들은 리디노미네이션을 통해 거래의 편의성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1962년 이후 우리 경제 규모가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화폐단위는 변하지 않아 ‘화폐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돼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새 돈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지하에 숨은 돈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반대론자들은 본질적인 가치 변동 없이 신권 교환, 시스템 개선 등의 비용만 든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들의 혼란이 커지고 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상품을 생산하고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우선이라고 반대론자들은 강조한다. 이번 맞짱토론에서는 ‘리디노미네이션 필요한가’를 주제로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와 이창양 KAIST 경영대학 교수가 찬성과 반대 입장에서 펼친 주장과 논리를 소개한다.
찬성 / 경제발전 불구 53년前 단위 사용…거래 편리·지하경제 양성화에 도움
디플레이션 우려되는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
현재 한국에서는 화폐단위 축소가 여러 측면에서 필요하다. 우선 1962년 화폐단위 변경 이후 국민총소득은 4045배, 1인당 국민총소득은 2120배 증가했다. 소득은 이처럼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이 됐는데 화폐단위는 53년 전 것을 사용하고 있다. 몸은 어른이 됐는데 어린 시절 옷을 입고 있는 셈이다.
OECD 회원국 중 달러당 1000원처럼 높은 화폐단위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외국에서 한국의 화폐단위를 보고는 후진국으로 생각하기 십상이라서 국격에도 맞지 않다. 경제 발전에 걸맞은 옷으로 갈아입어야 할 때다.
둘째, 거래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경제 규모가 커지고 물가도 올랐는데 53년 전 단위를 사용하다 보니 거래단위가 너무 크다. 불편이 적지 않다. 금융시장에서는 경(京)이라는 생소한 단위가 등장했다. 국민이 많이 이용하는 시장에서도 ‘0’을 세 개 떼고 사용하는 가게가 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거래가 불편해 원화의 국제화에 걸림돌이 된다.
셋째, 세원(稅源) 발굴 등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는 화폐 회수율이 떨어지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7~2008년 평균 95.5%였던 화폐 회수율이 금융소득 과세가 강화되고 금리가 낮아진 2013년에는 72.8%로 급락했다. 2014년엔 64.5%를 기록했다. 그만큼 화폐 발행액 가운데 지하경제로 숨는 돈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는 5만원권 회수율 하락의 영향이 크다. 5만원권 회수율은 2012년 61.7%에서 2013년 48.6%, 2014년 27.7%로 낮아졌다. 2015년 7월 말 5만원권 발행 잔액은 약 58조6000억원이다.
회수율을 고려할 때 17조원 정도만 회수되고 약 42조원은 회수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회수되지 않은 돈의 상당 부분은 검은돈이거나 과세 대상에서 탈루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전북 김제의 한 마늘밭에서 5만원권 110억원이 발견된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전체 화폐 발행 잔액의 72.8% 수준인 5만원권이 유통되지 않으면서 화폐를 발행해도 화폐 유통속도가 낮아 경제활동을 저해하는 부작용도 있다.
화폐단위 축소에 따르는 부작용으로는 수요가 늘어 물가가 상승하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교체 등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가상승률이 높을 때는 화폐단위 축소나 변경은 부적절하다. 지금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과 소비 및 생산활동의 부진이 우려되는 실정이어서 화폐단위를 축소할 적당한 시기다. 한 가지 고려해야 할 부분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이다. 화폐단위를 축소하면 지하자금이 양지로 나오지 않고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정부의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화폐를 유로화로 통일한 유로존의 경험을 토대로 면밀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화폐단위 축소 시 현재의 1000원·5000원·1만원·5만원권 외에 거래에 많이 쓰이는 2만원권을 추가해 거래 편의성을 높일 필요도 있다.
화폐단위 축소와 더불어 새로운 권종을 추가하기 때문에 화폐단위 합리화라고 할 수 있다.
반대 / 신권 발행 등 교체비용 너무 커…새 단위 적응까지 혼란·불편 가중
카드 확산으로 화폐단위 불편 줄어 신중한 접근을
원화의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 논의는 그동안 수차례 있었다. 이는 1962년 단행된 화폐 개혁 이후 우리 경제 규모의 확대로 그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는 2000년대 이후 짐바브웨, 모잠비크, 루마니아, 유로존 등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이 있었지만 유로존을 제외하면 주요 경제국의 예는 찾기 어렵다. 이들 나라는 높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화폐 가치의 하락이 가장 큰 이유였고, 학술적으로도 다양한 정치·경제적 요인 중에서 인플레이션이 리디노미네이션의 가장 유력한 설명변수로 제시되고 있다.
원화의 리디노미네이션으로 기대되는 일반적인 효과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현재의 1000원을 새로운 1원으로 변경한다고 가정하자. 우선 그동안 크게 커진 우리 경제 규모에 맞게 화폐단위를 조정함으로써 숫자의 표기와 거래가 간편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1억원은 10만원으로 줄어든다. 둘째, 달러당 네 자리로 표시되는 원화 환율이 달러당 1원 단위로 대등하게(?) 표시돼 거래의 편의와 원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신권 교환 과정에서 지하자금의 양성화가 기대된다.
그러나 이들 기대 효과를 따져 보면 추상적이거나 외형적인 성격이 짙다. 예를 들어 1234원으로 표기한 수치는 새롭게 1.234원으로 바뀌어 기장(記帳)의 간편함이 미약해진다. 미국의 달러-센트 체계처럼 소수점 하위 숫자들을 나타내는 화폐단위가 필요할 수도 있다. 거래에서도 신용카드와 각종 전자화폐의 확산으로 화폐단위로 인한 불편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달러당 원화가 1원 단위로 표시된다고 해서 원화의 실질적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이것이 원화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셋째, 지금까지의 화폐 개혁 사례와 오늘날의 금융 국제화를 고려할 때 지하자금 양성화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리디노미네이션의 단점은 그 기대 효과에 비해 실질적이고 직접적이다. 우선 그 비용이 매우 크다. 직접적으로는 신권 발행 비용과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 인프라 교체 비용이 만만찮다. 이런 비용이 내수 확대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지나친 논리다. 그 효과도 일시적일 뿐 아니라 금융회사의 비용을 증가시켜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둘째, 새로운 화폐단위가 경제활동에서 익숙해지기까지는 상당 기간 혼란과 불편이 불가피하다. 아직도 평(坪)보다는 제곱미터(㎡)가 생소하고 도로명 주소 체계가 생활화되지 못한 것과는 견줄 수 없는 혼란일 것이다. 또한 실물에 비해 화폐 가치가 낮게 인식돼 부동산 등 실물 수요가 늘어나기도 하고, 가계가 빚을 과소하게 인식하는 착시현상도 있을 수 있다. 셋째, 100원 이하 단위가 절상돼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한다. 혹자는 현재의 저물가 상황에서 이는 감내할 만하다거나 디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지만 개별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실질 구매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과거의 예를 보면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한 때는 대체로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크게 낮아지거나 지하경제가 지나치게 비대한 경우와 유로존처럼 화폐 통합이 이뤄지는 경우다. 무엇보다 화폐단위는 경제제도의 근간이므로 리디노미네이션의 득실과 경제 상황을 꼼꼼히 따져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설득력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의 이유를 찾기 어렵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