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훈 법조팀 기자 hun@hankyung.com
대형 로펌에서 일했던 한 변호사의 얘기다.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범죄로 간주해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법원이 최근 변호사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하면서 ‘전관 변호사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일부에서는 “수임료에 전관 프리미엄이 반영되지 않겠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들린다.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최교일 변호사가 법원에 선임계를 내지 않고 7건에 달하는 사건을 수임했다가 대한변호사협회의 징계심사를 받게 됐다. 선임계 제출은 전관 변호사가 검찰·법원의 담당자에게 전화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른바 ‘전화 변론’을 막기 위해 법에 따라 반드시 하도록 돼 있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최 변호사가 이렇게 맡은 사건 중에는 최근 ‘봐주기 논란’이 일었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사위 이모씨의 마약 사건도 포함됐다.
이런 내용이 사실이라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대형 전관예우 의혹 사건이다. 같은 이유로 대한변협의 징계를 받은 건수는 지난 10년간 13건이었다. 최 변호사 혼자서 지난 10년 통계의 절반을 채운 셈이다. 더구나 의혹 대상이 검찰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낸 인물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최 변호사는 “이씨 사건은 검찰 수사 단계에서 선임계를 제출했으며 사본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한변협 관계자는 “검찰 단계에서 선임계를 냈다면 따로 사임계를 내지 않는 이상 법원으로 서류가 넘어가지 않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반칙을 하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사회에서는 너도나도 반칙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결국 사회의 법질서는 약해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모두가 감당한다. 더구나 전관예우는 법을 가장 잘 지켜야 하는 법조인들의 일탈행위이니 아는 변호사 한 명 없는 대다수 서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크지 않을 수 없다. 현재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로 돼 있는 선임서 미제출 변론에 대한 벌칙 조항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야 할 것 같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