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 날 맛본 약과가 인생 바꿔
'나만의 한과' 170여종 개발
포천에 박물관 설립, 한과 전파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됐으면
추석 연휴를 나흘 앞둔 22일, 경기 포천시 영중면 신궁전통한과 본사 사무실에서 만난 ‘대한민국 1호 한과 명장’ 김규흔 신궁전통한과 대표(59·사진)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했다. 그는 “매년 한가위면 온 직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며 “지금도 전체 매출의 약 60%가 설과 추석 명절 판매에서 나오고, 예전엔 그 비율이 80~90%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탁자 위에 놓인 꿀약과는 은은한 단맛을 품고 있었다. 한과를 한입에 먹기 쉽도록 작게 줄이고, 간편히 갖고 다닐 수 있도록 낱개 포장한 아이디어 모두 김규흔 명장이 한과 업계에서 최초로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달콤한 전통과자를 만든 김 명장의 손엔 35년째 한과에만 매진해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그에겐 왼손 검지 한 마디가 없다. 3년 전 작업 중 기계 사고를 당했다. “속상하지 않냐고요? 이 손은 제게 훈장이에요. 사랑하는 일을 미치도록 열심히 해 최고가 되려 노력했다는 걸 증명하는 훈장이죠.”
결혼 후 처가 친척의 한과 사업을 함께하며 한과의 세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김 명장에게 한과는 어린 시절 명절이나 제사처럼 특별한 날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경북 영덕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19세 때 무작정 상경해 돈을 벌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 당시 세 들어 살던 집주인의 소개로 부인을 만났고, 그것이 운명을 바꿨다. “맞선 첫날 아내가 갖다준 약과의 맛을 잊을 수 없어요. 얼마나 맛있었는지 몰라요. 처가에서 일을 배우면서도 정말 재미있었죠. 천직이라 생각합니다.”
1981년 신궁병과를 창업하면서 독자적으로 한과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영세업체가 난립하던 시절. 좀 더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김규흔만의 한과’를 개발하고 싶었다. 170여종의 한과를 내놨고 젊은이 입맛에 맞춰 초콜릿과 한과를 접목하기도 했다. 인터넷 유통망도 적극 활용해 소비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특히 2008년 30억원을 들여 포천시 영북면에 한과문화박물관을 설립, 한과 전파에 적극 나섰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2013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대한민국 한과 명장 1호’(약과 부문)로 지정됐다.
김 명장은 “한과처럼 삶의 순간순간을 함께한 과자가 없다”며 “불교의 차 문화와 사회 질서를 강조한 유교정신, 우리만의 독특한 세시풍속 등 여러 가지 이야기가 한과 안에 녹아있는데 정작 우리가 그걸 고차원적인 문화 콘텐츠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서 디저트 시장이 매우 커졌는데 아직까지 프랑스 마카롱이나 일본 와가시(화과자) 같은 외국 과자가 대중적으로 훨씬 친숙한 게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소비자는 디저트라는 음식만 먹는 게 아니라 디저트를 둘러싼 문화를 먹는 것인 만큼 한과 발전을 위해 국가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지적했다.
김 명장의 꿈은 한과가 김장문화처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이다. 한과의 대중화를 위해 기술 전수에도 꾸준히 나서고 있다. “한과는 그저 명절에만 먹는 과자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디저트입니다. 한과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면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 더 많은 사람이 한과를 찾겠죠. 제 뒤를 이을 한과 명장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