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의 ‘두뇌’ 역할을 하고 있는 스탠퍼드대가 미국 경제학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 도전장을 던졌다.

14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스탠퍼드대는 시장 설계에 관한 이론으로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하버드대 교수를 영입했다. 또 2000년 이후 ‘예비 노벨경제학상’으로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11명 중 4명을 데려왔다. 이 중에는 불평등 연구로 명성이 높은 라즈 체티 교수와 디지털미디어 경제 분야의 권위자인 매튜 겐츠코프 교수도 포함됐다.

NYT는 스탠퍼드대가 미국 최고의 대학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따라 경제학과 선임교수를 25% 늘린 데 이어 연봉이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저명한 경제학자 11명을 보강했다고 보도했다. 하버드와 MIT, 프린스턴, 시카고대에 밀려 5위에 머물고 있는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의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한 투자라는 분석이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스탠리 피셔 Fed 부의장, 올리비에 블랑샤르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이코노미스트 등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 대부분이 MIT 출신이다. 최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지낸 10명 중 재닛 옐런 Fed 의장을 제외한 9명 모두 하버드대와 MIT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NYT는 스탠퍼드대가 경제학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 하버드대와 MIT 출신들이 경제 분야 요직을 독점하는 상황을 바꿔나가려 한다고 전했다. 스탠퍼드대는 이를 위해 거물급 학자를 영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요한 경제 이슈를 제기하고, 학계에서 많이 인용되는 연구 성과를 내 백악관과 정부, Fed 내 요직에 스탠퍼드대 출신들의 진출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NYT는 최근 경제학의 흐름도 실리콘밸리를 배후에 둔 스탠퍼드대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론 중심의 거시 분야에서 벗어나 빈곤 문제나 불평등 연구 등 사회현상과 관련한 분야로 경제학 연구의 중심이 이동하면서 사회학 등 인접 학문은 물론 광범위한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기 위해 컴퓨터공학과의 협업이 중요해졌다는 설명이다.

스탠퍼드대는 우수한 학자들을 영입하기 위해 넉넉한 예산 지원과 실리콘밸리 기업들과의 공동 프로젝트, 뛰어난 정보기술(IT) 지원 시스템 등을 앞세우고 있다. 시카고대에서 스탠퍼드대로 옮긴 겐츠코프 교수는 NYT에 “스탠퍼드대에서는 뭔가를 완성해가는 흥분과 희열이 있다”며 “대학의 강력한 지원 의지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스탠퍼드대가 정부의 적극적 시장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지언을 배출해온 MIT,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신고전학파의 본거지인 시카고대처럼 뚜렷한 학문적 태도를 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글러스 번하임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장은 “스탠퍼드만의 학문적 태도는 없다”며 “대신 최고 수준의 연구방법론을 확보하면서 학문의 질적 성과를 높여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