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에 대한 인식과 태도는 그 나라 국민성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반영하는 척도입니다.”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 부족의 왕자 출신으로 2008년 한국에 망명해 난민 지위를 얻은 욤비 토나 광주대 기초교양학부 교수(49·사진)는 최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한국은 6·25전쟁 때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았듯 이젠 난민들을 포용해야 한다”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도록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나 교수는 광주대에서 주 12시간씩 인권과 난민, 비정부기구(NGO), 디아스포라(인종의 집단이주) 등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최근 시리아 난민 문제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면서 그도 덩달아 바빠졌다. 여러 방송국에서 출연 요청이 쇄도하고, 한국에 난민 신청을 하려는 사람들의 면담 요청 횟수도 부쩍 늘었다. 그는 “난민 신청자와 만나기 위해 주말과 휴일엔 광주대 생활관 13층에 있는 연구실 문을 아예 열어놓는다”며 “도움 요청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밀려들어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한국에 정착하기까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의 조국인 DR콩고는 아프리카 중부 내륙에 있는 나라로, 1878년부터 1960년까지 벨기에 식민지였다. 독립 후 국가명이 자이르였다가 1997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두 차례의 내전으로 약 1000만명이 숨졌고, 난민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토나 교수는 1967년 DR콩고 반둔두주 키토나에서 한 부족의 왕자로 태어났다. 킨샤사국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 일한 엘리트다. 2002년 조제프 카빌라 독재 정권의 비리를 밝히려다 체포돼 투옥됐다가 탈옥,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왔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 6년간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인쇄공장과 사료, 직물공장 등에서 일하며 PC방과 공장 컨테이너를 전전했다. 임금 체불은 예사였다. 탈장으로 쓰러지고, 팔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를 겪기도 했다. 2013년 그의 삶이 KBS TV프로그램 ‘인간극장’에 소개됐고, 이를 계기로 지금의 교수직도 얻었다.

토나 교수는 “한국은 유엔난민법과 제네바난민협약에 조인하고, 난민법도 제정했지만 정작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하늘의 별 따기인 나라”라며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는 수천명의 난민신청자가 의식주와 직업, 의료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까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6.7%로, 유엔 난민협약국의 난민 인정률 평균(38%)에 크게 못 미친다.

귀화 신청을 하지 않은 그의 소망은 조국인 DR콩고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난민 인권을 위해 일하다 언젠가는 콩고로 돌아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는 게 마지막 꿈”이라고 말했다.

광주=최성국 기자 sk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