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 판사가 잘못 서명해 대법원에서 사건을 파기환송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원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발표했다. 재판 내용에 하자는 없었다. 다만 원심 법관 3명 중에서 배석판사 1명만 판결문에 서명했고 그렇게 한 이유도 따로 기재하지 않는 실수를 범했다.

의류업체를 운영하던 김씨는 매출 부진으로 적자가 계속되자 2010~2011년 1억1280만원 상당의 의류를 공급받고도 대금을 제때 주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원심은 김씨가 2010~2011년 저지른 6000만원 상당의 다른 사기사건을 병합해 심리한 뒤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그런데 재판장을 포함해 심리를 한 법관 3명 가운데 판결문에 서명한 것은 배석판사 1명뿐이었다.

대법원은 “재판장과 다른 법관 1명의 서명날인이 빠져 있고 서명날인할 수 없었던 사유도 적혀 있지 않아 법관 한 사람이 작성한 판결서에 의해 선고한 것이 되는 만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심리에 참여하지 않은 판사가 판결문에 서명해 파기환송된 사례도 있었다.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대구에 사는 한모씨와 부산에 거주하는 송모씨의 이혼사건 상고심에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원심의 결심 재판에 나온 배석판사는 이모 판사였는데 판결문에는 정모 판사의 이름과 서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판사가 해외 연수로 자리를 비우면서 정 판사가 서명만 대신한 상황이었다. 대법원은 “원심의 기본이 되는 변론에 관여하지 않은 판사가 판결을 했다”고 지적했다.

한 변호사는 “초보적인 실수로 판결이 파기환송돼 행정력이 불필요하게 낭비되고 소송 당사자는 재판을 오래 받아야 하는 불편이 생겼다”며 “법원이 신뢰를 얻고 국민에게 서비스를 잘하려면 이런 사례를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