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중협력 좋지만…한미동맹 회의론 불식시켜야"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의 ‘항일전쟁 및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과 관련, “한·중 관계 강화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한·미 동맹의 약화로 비쳐져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때 외교부 차관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 이사장은 31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하고 “한국의 외교가 중국으로 기울고 있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박 대통령의 전승절과 열병식 참석이 주목받고 있다.

“전승절에 참석하고 열병식에 빠질 거라면 차라리 안 가는 게 낫다. 전승절에 가면 열병식 참관은 당연한 것이다. 중요한 건 누구와 함께 가느냐다. 일본 총리도 가고, 미국도 대통령은 아니더라도 부통령 정도가 참석한다면 박 대통령의 부담이 없다. 미국의 동맹·우방국 가운데 박 대통령이 거의 유일하게 참석한다. 한국 외교의 ‘중국 경도론’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

▷청와대는 중국과의 협력관계를 고려한 결정이라고 하는데.

“한·중 관계뿐만 아니라 한·일, 한·미 관계 등 동북아시아 외교 틀에서 무엇이 가장 적절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미국이 박 대통령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그건 외교적 수사로 봐야 한다.”

▷정부는 한·미 동맹이 동북아 외교의 기본 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전·현직 당국자와 싱크탱크 인사들은 한·미 동맹 관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한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對日)·대중(對中) 외교 행보를 지켜보면서 한·미 동맹의 가치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10월 한·미 정상회담을 전략적 소통을 복원하는 계기로 삼고 한·미 동맹 회의론을 불식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뢰도발 사태 이후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얘기가 있다.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후에도 중국은 북한에 강하게 경고했다. 그해 12월 당시 다이빙궈 중국 국무위원이 평양에 가서 ‘당신들의 도발로 인해 일이 생기면 못 도와준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북한의 도발은 계속됐다. 북한은 오래전부터 중국 말을 듣지 않고 있다. 2012년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계획을 발표할 때 중국은 특사를 보내 ‘발사하지 말라’고 했지만 북한은 중국 특사단이 떠나기도 전에 미사일을 발사했다.”

▷남북 고위급접촉 합의안이 우리 정부의 사과 요구에 미흡했다는 비판이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유감을 표명하는 ‘특허’를 갖고 있다. 지뢰도발에 대해 쉽게 면죄부를 줬다.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은 3년 내내 ‘천안함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할 테니 5·24 제재조치를 풀어달라’고 요구해왔지만 우리는 책임을 전제로 한 유감 표시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남북 당국자회담에서 5·24 조치 문제가 논의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지뢰도발과 같은 해법으로 풀자고 할 때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그게 숙제다. 천안함 사건은 수많은 군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만약 정부가 이번과 같은 방식으로 천안함 폭침에도 면죄부를 주면 국론분열이 일어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이 북한을 굴복시켰다는 평가가 있다.

“협상 자체에서는 얻은 게 별로 없지만, 전체 사건을 놓고 보면 큰 성과를 거뒀다. 북한의 온갖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섬으로써 공갈과 협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북한이 분명히 깨달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단호한 대응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을 파탄시킨 것이다. 어느 대통령이라도 이보다 더 잘할 수 없을 것이다.”

장진모/김대훈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