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8할은 전후세대"…제대로 사죄했는지 의문
가해 행위 규명 미흡·피해자 사과 요구·역사교육 제대로 하는지도 관건
사죄 제대로 안하면 후손이 더 큰 사죄 숙명 질 수도


다음 세대가 사죄의 숙명에서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담화(전후 70년 담화)가 논란을 부르고 있다.

아베 총리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자식, 손자, 그 다음 세대가 "사죄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일본의 가해 행위에 대한 사죄를 머지않아 끝내겠다는 취지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아베 총리는 현재 일본 인구의 80% 이상이 전후에 태어나 전쟁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내세웠다.

아베 총리 측근이며 전후 70년 담화에 관해 제언한 '21세기 구상 간담회'의 좌장 대리인 기타오카 신이치(北岡伸一) 국제대학 학장이 앞선 발언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확인된다.

기타오카 학장은 올해 5월 아사히(朝日)신문과 인터뷰에서 "국민이 과거에 대한 책임을 마주할 때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던 일반 국민, 어린이였던 사람, 그 뒤에 태어난 사람이 져야 할 책임이 각기 다른 것은 당연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베 총리는 14일 담화에서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들 일본인은 세계를 넘어 과거의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과거를 계속 받아들여 미래에 넘겨 줄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앞뒤 맥락을 고려하면 전쟁의 역사를 배우고 기억하되 사죄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는 벗어날 때가 됐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는 과오에 대해 더는 사죄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이 언젠가 도래한다는 것을 전제로 당사자가 대부분 세상을 떠났으니 사죄를 끝내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됐다는 인식을 내비친 셈이다.

세계 각국 언론이 바로 이 '전후세대 사죄 숙명 탈피'라는 대목을 주목하는 것은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이날 담화에서 언급했듯이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를 비롯해 역대 내각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관해 반복해 사죄의 뜻을 표명·유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 과정에서 이뤄진 일본의 가해 행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고, 피해자·유족·피해국이 여전히 사죄를 요구하고 있으며, 피해 회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사죄를 끝내기에는 이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일본의 학교 교육이 자국의 가해 행위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고 일부 출판사의 교과서가 일본의 부끄러운 과거를 윤색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고려하면 역사의 직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인지도 의문이다.

전쟁에 직접 관여한 세대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고 하지만 뒤에 태어난 세대가 식민지 지배와 침략 기간에 피해국의 인력과 자원을 동원해 이룬 유·무형의 기반을 이어받아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해국이 먼저 이제 슬슬 사죄를 끝내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피해국은 물론 제3국의 공감을 얻기는 어렵다.

아베 내각의 선언으로 사죄를 중단한다면 일본의 젊은 세대는 사죄를 계속할 '숙명'에서 벗어나기는 커녕, 오히려 충분히 사죄하지 못한 국가의 후손,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국가의 국민이라는 더욱 가혹한 '숙명'을 지고 살 수도 있다.

일본의 가해 행위에 관해 "상대국이 '시원하게 한 것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사죄했으니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올해 4월 발언이 더욱 이목을 끈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