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분장 대신 꽃단장…요즘 귀신들은 연애중♡
해마다 여름이면 방송사들은 으스스한 ‘납량 특집’ 드라마를 선보인다. 원한을 풀기 위해 이승을 떠도는 귀신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소복을 입고 나오는 권선징악 이야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올여름엔 이런 드라마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귀신을 로맨틱코미디나 멜로, 정치 추리극 등에 등장시킨 복합장르 드라마가 대세다. 사람과 똑같은 모습의 귀신과 요괴가 사람들과 함께 놀러 다니며 연애를 하거나, 권력을 놓고 싸운다.

◆귀신도 연애한다…아기자기한 로맨틱코미디

“미쳤어. 진짜. 귀신 주제에 진짜 좋아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니 뭐. 연애 기분만 느끼는 건데 그것도 안 되나?” 지난 1일 방영된 케이블채널 tvN의 금·토 드라마 ‘오 나의 귀신님’에서 남자를 유달리 밝히는 처녀귀신 순애(김슬기 분)는 인간 선우(조정석 분) 옆에 누워 혼잣말을 한다. 드라마는 생전 제대로 연애를 해본 경험이 없는 처녀귀신 순애가 주방 보조로 일하는 봉선(박보영 분)의 몸에 들어가 겪는 일을 담았다.

순애는 사람을 해코지하며 원한을 푸는 귀신과는 다르다. 오히려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니 맛있게 먹고 마시며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며 빙의한 몸으로 연애를 즐기는 ‘쿨한 귀신’이다. 양희승 작가는 “귀신이라는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보고 싶었다”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귀신의 도움으로 소심한 사람이 사랑을 쟁취하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31일 방영된 KBS 드라마 스페셜 여름 시즌 첫 작품인 ‘귀신은 뭐하나’도 귀신을 소재로 한 로맨틱코미디다. 소심한 성격의 구천동(이준 분)에게 헤어진 첫사랑 차무림(조수향 분)이 귀신이 되어 찾아와 벌어지는 황당한 소동을 담았다.

◆‘사회악’ 상징하는 귀신…역사 정치 추리극

“요괴를 섬기는 왕이 어찌 사람이 희망인 세상을 만들겠는가. 당신이 섬기는 흡혈귀로 인해 당하는 백성의 고통을 아는가.” 지난달 8일부터 방영 중인 MBC ‘밤을 걷는 선비’는 조선시대 노론과 소론의 권력다툼을 배경으로 하는 정치 추리극이다. 전통적인 모습의 귀신 대신 서양의 뱀파이어가 등장한다. 초인적인 힘을 가진 뱀파이어는 인간과 권력을 놓고 다투는 존재다. 임금 위에 군림하며 악행과 폭정을 일삼는 뱀파이어 귀(이수혁 분)를 없애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왕세손 이윤(심창민 분)과 선비 김성열(이준기 분)의 투쟁을 그린다. 초자연적인 현상보다 정치적 협상과 여론몰이, 모략이 극을 이룬다.

7일 방영한 KBS 드라마스페셜 ‘붉은 달’도 조선 영조시대를 배경으로 사도세자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다뤘다. 역사적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 드라마다. 궁궐 안 권력다툼이 만들어낸 비극을 저주와 원한, 귀신 등 공포 소재를 이용해 풀어냈다.

◆달라진 여름 TV 편성

올여름 귀신 소재 복합장르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것은 더 이상 고전적인 귀신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데다 그런 극을 제작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구미호와 처녀귀신 등 전통적인 귀신이 나오는 공포물은 컴퓨터그래픽 영상을 많이 써야 한다. 제작비가 많이 드는 데 비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는 쉽지 않다. 고화질(HD) 화면에 나온 그래픽 질이 떨어져 보이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요즘 나오는 귀신이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게 나오는 이유다.

한 케이블채널 PD는 “공포물이 여름과 잘 맞기는 하지만 학교나 빈집에서 피묻은 원혼이 나타난다는 식의 정형화된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며 “시청률이 나오지 않으니 고전적인 소재를 다양한 장르에 엮는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