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미루다 실적 부진 부메랑…유럽계은행 CEO 교체 '수난'
올 들어 유럽계 주요 은행의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교체되고 있다. 지지부진한 실적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계 은행은 대규모 구조조정과 자본 확충을 단행해 빠르게 수익성을 회복했지만 유럽계 은행들은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

이달 초 안토니 젠킨스 바클레이즈 CEO가 옷을 벗은 것을 비롯 올해 총 네 곳의 유럽계 은행에서 CEO를 교체했다. 지난 2월엔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SC) CEO, 3월엔 브래디 도건 크레디트스위스 CEO, 6월엔 안슈 자인과 위르겐 피첸 도이치뱅크 공동 CEO가 물러났다. 미국계 주요 은행에서 CEO가 바뀐 사례가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CEO가 교체된 유럽계 은행 네 곳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7년 18%에서 지난해 3.7%로 급락했다. 미국계 은행 골드만삭스(11.2%)와 JP모간(10%)의 3분의 1 수준이다.

외신은 “최근 몇 년간 유럽 경제가 부진해 투자은행(IB) 업무와 관련한 거래 건수와 규모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유럽계 은행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채권부문 거래가 규제 강화로 위축된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유럽계 은행은 전통적으로 IB부문에서 강점을 지닌 미국계 은행을 따라잡기 위해 2000년대 들어 사업을 급속히 확장했다. 2000~2008년 유럽계 은행의 연평균 자산성장률은 20%를 웃돌았다. 미국계 은행의 두 배 정도다.

덩치가 커진 만큼 효율성을 높이지 못한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계 은행이 과감하게 IB부문을 매각하고 인력을 감축하는 동안에도 유럽계 은행은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에 느긋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유럽계 은행이 기존 유니버설뱅킹(은행과 증권업무 겸업)이 아닌 경쟁력 있는 사업부문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사업 구조를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외신은 “CEO를 교체한 유럽계 은행들은 채권·외환·상품 거래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보다 자본이 적게 드는 자산관리부문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