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과 대법관들이 지난 23일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의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대법원 제공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과 대법관들이 지난 23일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의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있다. 대법원 제공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큼 사회 구성원들이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순일 대법관)가 형사사건 변호사 성공보수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인용한 법언이다. 1924년 영국의 법률가 고든 휴어트가 한 말로 “사법절차의 공정성이 의심을 받게 되면 사회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민일영 대법관 등 네 명의 보충의견에 나온 내용이지만 전체 판결의 취지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성공보수는 법치주의 해쳐”

본래 이번 사건은 변호사가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받는 게 정당한지와 관련이 없었다. 원고 허모씨는 자신의 아버지가 2009년 절도 혐의로 구속되자 조모씨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허씨는 조씨에게 착수금으로 1000만원, 성공보수로 1억원을 줬다. 허씨 아버지는 구속 두 달여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고 본 재판에서도 집행유예를 받았다. 허씨는 2012년 “성공보수를 받는 건 정당하지만 금액이 과도하니 일부를 돌려달라”는 취지로 소송을 냈다. 기존 대법원 판례의 범위 내에 있는 내용이다. 2심 재판부는 “성공보수가 부당하게 많으므로 4000만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원심에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원고의 청구취지와 관계 없이 형사사건 변호사 성공보수가 정당한지에 대해 별도의 판단을 내렸다. 여기서 대법원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에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기존의 판례를 변경했다.

대법원은 “변호사는 수사나 재판 담당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위험에 빠질 수 있고 의뢰인은 부적절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사건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 있다”며 “특히 의뢰인은 구속 등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이 같은 약정을 맺게 되므로 과다한 성공보수를 약속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절차가 돈의 유혹이나 검은 거래에 의해 좌우된다고 국민들이 의심한다면 법치주의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의견에 대법관 전원이 찬성했으며 반대는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맺은 약정은 인정하되 앞으로는 이런 약정을 맺을 수 없다고 조건을 붙였다. 민사사건 성공보수에는 이번 판결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고위급 판검사를 지낸 전관(前官) 변호사가 성공보수를 많이 받아왔다”며 “전관예우 유전무죄 등의 사법 불신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변호사 10명 중 8명 ‘부정적’

변호사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업계에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우세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4일 회원 2920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번 대법원 판결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558명(54.1%), ‘대체로 부정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749명(26%)이었다. 10명 중 8명이 부정적 평가를 내린 셈이다. ‘대체로 긍정한다’는 380명(13.2%),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195명(6.8%)에 불과했다. 한 대형 로펌의 대표변호사는 “지금까지 맺은 약정은 괜찮고 앞으로는 안된다는 건 대법원이 새로운 입법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호사들이 이처럼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이유는 수임료 총액이 낮아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대형 로펌은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방식(타임 차지)을 채택하지만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여전히 착수금과 성공보수 방식으로 수임료를 받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개인 개업 변호사가 보통 형사사건을 맡으면 착수금 수백만원에 성공보수를 많게는 1000만원까지 받는다. 대형 로펌에서도 검찰 수사단계에서는 불기소나 불구속이 나왔을 때 성공보수를 받는 방식이 많이 쓰였다. 성공보수가 없어지면 착수금이 올라가겠지만 상승액은 전에 받던 성공보수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법률시장 소비자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 변호사는 “피고인이 궁지에 몰린 점을 이용해 수억원대의 성공보수를 부르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변호사는 “착수금만 잔뜩 받고 일은 안 하는 변호사가 속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이 돈에 좌우된다면 법치(法治) 무너져"…전관예우 사라지나
해외에서는…美·獨·佛 원칙적 금지…日은 허용

변호사가 형사사건 성공보수를 받아온 곳은 한국과 일본뿐이다. 대부분은 성공보수를 금지하거나 예외적인 경우에만 인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유럽 변호사 행위규범’을 통해 ‘승소비례보수 약정’을 금지했다. 승소비례보수 약정은 의뢰인이 사건의 결과에 따라 변호사에게 보수를 준다는 내용으로 성공보수와 비슷하다. 다만 EU는 이 약정이 공인된 변호사 보수표에 따른 것이거나 관련 기관의 통제 하에 있다면 가능하다고 예외를 뒀다.

독일과 영국은 EU 규정대로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독일은 성공보수금 합의를 금지하되 변호사보수법을 통해 “의뢰인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착수금을 줄 수 없을 때는 가능하다”고 정했다. 영국도 원칙적으로는 금지했으나 ‘성공보수금 계약에 관한 명령’을 제정해 도산사건 등 일부에서는 할 수 있도록 했다.

프랑스 법원은 “변호사는 당사자로부터 독립해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이유로 성공보수를 전면 금지했다. 미국에서도 매사추세츠주 법원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주에서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을 금지한다.

성공보수가 금지된 곳은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방식(타임 차지)으로 변호사가 보수를 받는 게 일반적이다. 변형된 성공보수가 등장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한 변호사는 “수임료에 성공보수를 포함해 받은 뒤 실패하면 돌려주는 계약이 예상된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