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성장판을 닫자는 건가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등장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독서라는 새로운 습관이 형성돼 많은 사람이 원시(遠視)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해 안경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안경 수요가 증가하자 렌즈를 제작하고 실험하려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 덕분에 현미경이 발명됐다. 또 현미경 덕분에 우리는 우리 몸이 극소한 세포로 구성돼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꽃가루의 진화가 벌새의 날개구조를 바꿔놓을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듯이, 인쇄술의 발명이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세계를 세포 차원으로까지 확대할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일어난다(스티븐 존슨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중).’

미래 투자 줄이겠다는 정부

오늘날의 세상을 만든 여섯 가지 혁신의 비밀을 풀어가는 한 대목이다. 존슨이 주목한 것은 인접 가능성, 상호 교잡, 네트워크 등을 통해 혁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른바 ‘공진화(共進化)적 상호작용’이다. 이렇게 해서 한 분야의 혁신, 혹은 일련의 혁신이 전혀 다른 영역에 속한 듯한 변화를 결국에는 끌어낸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저성장을 두고 ‘혁신의 고갈론’을 펴며 비관론적 주장을 내놓기도 하지만 진화론자들은 그 반대다. 브라이언 아서, 폴 로머 등 기술경제학자들은 혁신은 가용한 지식 조각들(building blocks)의 결합만 갖고도 무한히 계속될 거라고 주장한다. 다만 어떤 결합이 혁신을 가져올지 그게 문제다. 국가마다 연구개발(R&D)을 독려하는 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미국 정부와 기업의 R&D 투자를 합하면 전 세계의 3분의 1에 달한다는 계산이다. 그만큼 혁신을 위한 결합 시도가 많다고 보면 미국이 혁신을 선도하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최근 정부, 기업 할 것 없이 R&D 투자를 급속히 늘리는 중국이 겁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R&D까지 대기업 때리기 하나

반도체를 빼고는(이마저 5년 후는 장담 못하는 상황) 믿을 게 없다고 할 정도로 산업위기론에 휩싸인 한국이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내년 R&D 예산을 줄이겠다는 모양이다. 불길한 징조다. 정부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지만 언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창조경제를 내건 정부에서 R&D 예산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과거 추격형 발전 과정에서나 통했던 선택과 집중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것도 식상하다.

정부가 R&D 예산을 줄이면 기업이라도 R&D 투자를 더 하게 해야 하지만 그것도 아니다. 국가 전체 R&D 투자의 78%가 넘는 기업에 대한 R&D 세제 지원도 일제히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기업 전체 R&D의 74%를 담당하는 대기업이 타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세액공제를 더 많이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R&D 세제는 기업이 R&D 투자를 많이 하도록 유인하자고 만든 제도다. 대기업의 세액공제가 많은 건 그만큼 투자를 많이 한 결과일 뿐이다. R&D 투자 비중에 비해 세액공제 비중이 더 높은 것도 아니고, 중소기업에 돌아갈 세액공제 몫을 가로챈 것도 아니다. 반(反)대기업도 아니고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 정부는 혹시 R&D 투자를 시작한 지 겨우 몇 십년밖에 안된 한국이 지난 몇 백년간 투자를 한 선진국과 경쟁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건 아닌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