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세포만 파괴하는 양성자 치료…간암·폐암·안구암에 효과적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로 주요 대형병원이 수술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국립암센터에 암(癌) 환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새로 암 진단을 받은 환자들이 메르스 확진자가 없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양성자 치료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립암센터에 수술 일정 문의를 많이 하고 있는 것이다.

양성자 치료기는 암 덩어리만 정확하게 공격하고, 주변 정상조직의 손상을 줄여 식욕부진·피로감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최첨단 의료장비다. 하지만 문의 환자의 80% 이상이 양성자 치료기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환자들이라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환자가 양성자 치료기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어떤 환자가 효과를 볼 수 없는지 알아봤다.

양성자로 암세포만 타격

암세포만 파괴하는 양성자 치료…간암·폐암·안구암에 효과적
국립암센터가 보유한 양성자 치료기는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린다. 미국 하버드대 부속병원, MD앤더슨 암센터, 일본 국립암센터 등 세계 12개국, 28개 의료기관만 보유하고 있다. 2007년 국내에 양성자 치료기 도입 당시 500억원(기기비용 360억원, 공사비용 120억원 등)이 들어갔다. 내년에는 삼성서울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제주한라병원 등이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양성자 치료는 양성자를 빛의 60% 속도로 가속해 암 조직에 쏘는 치료다. 김대용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은 “원통형 ‘사이클로트론(cyclotron·이온가속장치)’에서 빛 속도의 60% 정도까지 양성자를 가속한 다음 3개의 치료실로 전송해 환자의 암세포를 맞힌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가속된 양성자선은 몸속을 통과하면서 정상조직에는 방사선 영향을 주지 않다가 암 조직에서 최고의 에너지를 쏴 암세포의 DNA(유전자)를 파괴하는 원리다. 이후 양성자선은 바로 소멸되고, 암 조직 뒤에 있는 정상조직에는 방사선 영향을 주지 않는다. 치료 과정이 신속하고 고통이 거의 없다. 양성자 치료를 받는 시간도 1회 20~30분 정도다. 양성자선이 환자에게 쬐어지는 시간은 2~3분이다. 나머지 15~25분은 환자를 치료대 위에 고정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다.

X선보다 탁월

양성자는 기존 방사선(X선)과 다르다. X선은 암세포뿐 아니라 주변의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친다. 합병증 등 부작용이 잦다. 김 센터장은 “양성자는 다른 세포에는 별 영향을 주지 않고 통과하다가, 암 조직에 도달하는 순간 파괴력을 극대화한 뒤 바로 소멸하는 것이 장점”이라며 “X선이 파동으로 에너지를 전한다면, 양성자는 돌멩이를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격”이라고 말했다. 효과도 탁월하다. 김 센터장은 “X선보다 모든 종류의 암 치료에서 우수하다”며 “특히 폐·간·전립선·뇌종양에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안구암 치료에선 획기적이다. 이전에는 다른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안구 전체를 들어내 수술했지만, 양성자 치료는 그런 불편 없이 암세포만 정확히 타격할 수 있다.

전립선암, 수술 없이 완치 가능

수술로 암세포를 떼어내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뇌수막종, 뇌신경초종 같은 뇌암은 양성자 치료 도입으로 완치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특히 초기 폐암을 비롯해 전립선암, 간암, 구강암, 후두암, 인두암 환자는 수술하지 않고 양성자 치료만으로 완치를 기대할 수 있다. 눈에 생기는 맥락막흑색종, 척추에 생기는 척색종처럼 방사선에 민감한 조직 근처에 생긴 암도 양성자 치료가 가능하다. 양성자선은 기존 방사선과 달리 암 주변 정상 조직에 자극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종전까지 소아(어린이)암 환자에게 방사선 치료를 하면 치료 후 키가 잘 자라지 않는 등의 부작용이 있어 방사선 치료를 꺼렸다. 그러나 양성자 치료는 이런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방사선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 암 환자도 양성자 치료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경환 전 국립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최근 유방암에 양성자 치료를 했을 때 수술하는 것만큼 효과가 좋았다는 논문이 발표됐다”며 “림프절 통증이나 부종 등 부작용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위암·대장암·전이암은 치료 안돼

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전이된 암은 치료가 어렵다. 눈에 보이는 암을 없애더라도 다른 곳에 또다시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혈병, 림프종 등 혈액암도 치료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혈액을 타고 몸 전체를 돌아다니는 암세포들을 양성자로 맞힐 수 없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국내 성인들이 많이 걸리는 위암 대장암 직장암 등 위장관에 생긴 암은 양성자 치료보다 일반병원에서 수술하는 것이 더 낫다”며 “수술로 큰 암덩어리를 제거한 뒤 환자 상태에 따라 방사선(양성자) 치료를 할 수도 있지만 위나 대장처럼 움직이는 장기에는 방사선을 정확하게 맞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설혹 방사선 치료를 하더라도 위장관이 좁아지고 출혈이 생기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 잘 시행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현재 국립암센터는 위암 대장암 직장암 환자의 접수를 하지 않고 있다.

비싼 게 흠…“꼭 필요한 사람만”

암 센터는 방사선으로도 치료 가능한 환자에겐 양성자를 권하지 않고 있다.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양성자 치료는 현재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소아암(뇌종양·두경부암 등)을 제외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탓에 한 주기 치료(평균 20일, 20회)에 2000만~30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보통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방사선은 25~30회 치료에 100만~200만원 선이다. 10배 이상 비싸다. 암센터 관계자는 “1년에 250명 정도만 양성자 치료를 한다”고 말했다.

■ 양성자 치료

수소 원자의 핵을 구성하는 소립자인 양성자 빔을 이용해 암 조직을 파괴하는 치료법이다. 기존의 X선을 이용한 방사선 치료 시 발생하는 부작용이 거의 없다.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도움말=김대용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장, 신경환 전 국립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교수